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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게 Nov 13. 2023

"아이는 안 낳니?"에 대응하는 꿀팁

아시는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추첨을 통해...

하나뿐인 남동생이 결혼하던 날을 떠올려본다.

화창한 초가을의 일요일 낮

말간 하늘빛 한복에 혼주 화장까지 더하니 세상 고왔던 우리 엄마,

한껏 긴장했으면서 아닌 척 어색하게 웃던 귀여운 아빠,

애 같기만 했는데 어느덧 꽤 의젓하던 동생,

그런 동생 곁을 지켜주던 아름다운 신부- 든든하고 고마운 올케,

그리고

내 귀에 쉼 없이 날아드는 공통 질문

"아이는?"


행복해하는 부모님 곁에서, 오랜만에 뵙는 친지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나의 결혼식, 혹은 다른 지인들의 결혼식과는 또 다른 즐거움과 감동으로 벅차오르는~~~

나의 산통을 깨는 수많은 물음표들  

"아이는 없니?", "아이는 안 갖게?", "애 안 낳으려고?", "왜 안 낳아?".........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아이를 묻는 말이

동생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 보다 더 많이 들렸다면, 믿기겠는가?

과장이 아니다.


결혼식장 복도에 서있는 내내,

아는 친척, 모르는 친척, 기억이 날듯 말듯한 친척, 말로만 듣던 엄마 친구, 들어본 적도 없는 아빠 지인 등

나를 아는 척하는 모든 분들이 어디서 지령이라도 받았는지 비슷한 질문들을 날렸다.



화장실에선 더 했다.

작고 붐비던 문제의 화장실에 들어서자 먼저 줄 서있던 아주머니 두 분께서 날 아는 척하며 이런저런 안부를 묻더니, 역시나 마지막엔 공통 질문을 날리셨다. (아래 참고)


결혼 7년 차인 만큼 이젠 정말 외울 정도로 많이 들어 식상한 레퍼토리지만

장소가 장소이니.. 조용하고 귀가 많아서 좀 민망해졌다.

"낳아야지!" 뒤에 전개 역시 꽤 익숙하게 흘러갔다.

"신랑도 훤칠하고~ 너도 예쁜데~ 둘 닮은 아이는 얼마나 예쁘겠어!" (이건 기분 좋은 레퍼토리 중 하나)

"하하 감사합니다..^^" (앞 문장에 대한 화답)



그러다 내 뒤로 한 여성분이 들어와 줄을 섰는데,

정확히 누군진 모르겠으나 왠지 낯익었기에 (아마도 엄마의 지인으로 추정) 내가 먼저 가볍게 인사를 드렸더니. 역시나 첫인사말만 달랐을 뿐.. 비슷한 흐름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근데 아직도 애가 없어?”

화장실 내 청중들도 의식되고 방금과 똑같은 레퍼토리를 밟지 않기 위해 난 답변을 바꿔봤다

"노력 중이에요.."

사실 이 대답도 자주 써먹는 대답이긴 하다.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노력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각자 기준이 다를 뿐.

내 경험상 이다음으론 더 이상의 질문은 멈춘다. 그런데 이분은 달랐다. 기출 변형 질문이 나왔다.

“혹시 필요하면~ 의사 소개 해줄까?”

본인의 딸도 그 의느님 덕에 애 둘을 낳았단다.

“하하하..”

나는 또 그저 웃는 얼굴을 지을 뿐.



이런 질문에 유독 많이 노출되는 데는 나의 태도가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딩크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2세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애매한 거다.'


그간  다양한 답변을 해봤다

1. (낳을지 말지) 고민 중이예요

2. (낳으려고) 노력 중이예요

3. (낳기에는) 아직은 둘이 좋아서요

4. (잘 낳고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요

5. 그게 왜 궁금해요? - 직접 말해본 적은 없음


1번과 2번은 앞의 화장실 대화에서 볼 수 있듯 예후가 좋지 않다.

3번은 결혼 1~2년 차 까지는 괜찮았으나 이후부터는 '언제까지 그럴 거 같아?', '늙으면 외로워', '원만한 부부 생활을 위해서라도 자식이 있어야지'라는 악담 같은 훈화 말씀이 이어지길래 더 이상 써먹지 않는다.  

4번은 '자신' 대신 '시간' 혹은 '돈' 혹은 '여유' 등으로 변형도 가능한데, 이 경우 '전쟁통에도 애는 낳는다', '아이는 자기 숟가락 들고 태어난다'는 출산장려 구호를 듣게 되는 건 그나마 낫고. 간혹 '철없는' 혹은 '책임감 없고 나약한' 혹은 '이기적인' 요즘 것들로 비치는 수도 있어서 추천하지 않는다.  

(혹시 위 다섯 가지 답변 외에 더 나은 답변이 있다면 제보 좀 부탁합니다..)



그 어떤 결혼식에서도 눈물을 흘린 적 없던 내가(심지어 내 결혼식에서도 싱글벙글 웃는 신부였음) 웬일인지 눈물을 펑펑 흘렸던 내 동생의 결혼식. 내 생애 첫 혼주란 역할을 해보던 날. 새로운 가족이 생긴 뜻깊은 날.

그 감동적이고 특별한 날을 떠올릴 때마다 "아이는?"이라는 답 없는 질문도 같이 떠오른다는게 씁쓸하다.


남동생의 결혼식 날 - 우리 아빠와 남편 / 양가 어머님의 아름다운 투샷 / 신난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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