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남자

- 나의 취향 탐구

by 붉은낙타



최근에 ‘시크릿가든’을 다시 보기 했다. 삼신할미 랜덤 재력에 천상천하 유하 독존 싸가지를 옵션으로 달고 사회적 관계에 아주 유아적인 김주원이라는 인간에게 나는 왜 끌릴까. 궁금했다. 그런 나 자신이 신기했다. 길라임이 멋있는 건 맞는 얘긴데, 김주원에게 끌리는 내가 신기했다. 외모적으로 김주원은 내가 그동안 좋아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나는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을 좋아하는데 김주원은 쌍꺼풀 눈이다. 난 싸가지없는 인간이 싫은데 김주원은 제외다. 나는 어떤 판타지가 있을까. 궁금했다. 사랑이 늘 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싫은 사람을 좋아할 리는 없는데.

그렇게 나의 취향 탐구는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드라마를 좋아한다. 한국드라마를 너무 봐서 자막 있는 건 잘 못 보겠다는 지경이다. 가리지 않고 많이 보는 편이다. 최근 드라마 중 내가 명작으로 꼽는 건 붉은달푸른해, 마더, 검블유, 멜로가취향이다.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건 스토브리그. 나는 다시보기보다는 좋아하는 드라마일수록 본방 보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드라마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그게 드라마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기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치랄까. 여하튼, 시크릿가든은 10여 년이 지난 드라마지만, 최근 드라마보다도 남녀 관계에 있어 감정의 의도적 숨김 혹은 설정이 없다.

다시보기를 하면서 난 좀 웃었다. 나의 취향을 봤기 때문일까. 내가 좋아하는 이성에 대한 포인트를 확실하게 느꼈다. 나는 귀여운 남자를 좋아한다. 근데, 이 ‘귀여운’이라는 감정은 아주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 귀여운 것이 누군가에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자기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꾸미지 못하는 이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 서툼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나에게 들키는 그의 감정. 근데,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감정 아닌가.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나에게 보이고 그 때문에 사랑도 시작되는 것 아닌가. 이쯤으로 가니 사랑이 먼저인지, 귀여운 게 먼저인지 좀 헷갈린다.

이서희님의 글 중에 <상대 결점조차 감싸주는 한마디 “넌 귀여워”>가 있다. 이서희님은 ‘서로를 귀여워하는 것은 상처 치유의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내가 느끼는 내 존재의 못생김을 웃음과 사랑스러움의 대상으로 환치시키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을 누르던 돌무더기 중 하나쯤은 굴러 떨어져나간 기분이 든다.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지 않아도 좋다. 치유란 이뤄야 할 목표가 아니라 끊임없이 실천하고 익숙해지는 행위다. 혼자 익히고 배워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동료나 가족, 친구 혹은 전문가, 사회와 공동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내 결점이 추하고 역겹고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해 주는 시선 또한 도움이 된다.”라고 썼다. 나는 나에게 ‘귀엽다’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켜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 좋다. 귀엽다라는 감정은 내 안에 오래 묵어 일어날줄 모르는 사랑이라는 감정 이전의 감정이다. 귀엽다라는 감정이 충분히 일어나야 사랑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드라마 속에서 김주원은 아주 유아적이다. 물론, 드라마적인 설정을 가진 캐릭터이지만, 스스로도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성적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스스로 ‘얼떨떨해’한다. 그러나, 그런 얼떨떨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내가 나의 감정을 모르겠고, 그래서 자신은 ‘반쯤 미친놈’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말한다. 어떤 그럴듯한 말로 꾸미지 않는다. 그런 김주원에게 길라임은 너의 행동이 어떤지 정확하게 환기시켜 준다. 김주원 앞에 당당하다. 현실에서는 전혀 없을 관계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내어 놓는(이쯤에서 나는 좀 어이없었다. 아, 사랑하면 이 정도해야 하는 건가? 사실, 나는 이제 이런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아주 정확하게 판타지다. 마지막 결말에서 보이듯 그저 꿈일지도 모른다. 시청자를 위한 꿈.

누군가를 위해 집 앞에 그를 위한 뭔가을 매일 가져다 놓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작은 뭔가 먹을 것이기도 했고, 다른 것이기도 했다. 부끄러워 직접 말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이 귀엽다. 새삼스럽게 내가 느꼈던 귀여움의 순간이 떠오른다. 귀여움은 굳이 이성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일 때도 있고 동성일 때도 있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의 말을 들을 때면 이런 나의 존재를 어쩌나, 무서울 정도로 아이의 귀여움을 감당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럴 때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고 허그가 저절로 나온다. 이서희님은 ‘귀여워하기는 배우고 익혀야하는 행위’라고 했다.

“제 문제, 저란 사람을 모조리 한심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기분이 들게 해요.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져요.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되고요. 내 미세한 불안함을 먼저 알아봐 주는 것도 좋고 그런 나를 괜찮다는 듯이 바라봐 주는 모습도 좋아요. 게다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귀엽다고까지 해 주니 그녀 앞에서는 나를 숨기거나 더 나은 사람처럼 가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편안해지기도 하고요. 나란 존재가 무겁고 답답하게만 느껴지지 않고 그 무게가 가뿐해지는 것도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뻤어요. 왜냐면 그녀는 제가 가장 귀엽다고 느끼는 존재이기도 하거든요.”
“어떨 때 귀여워하는데요?”
“저한테 실수하고 그걸 만회하기 위해 비장해질 때요. 바로 사과하기 미안하니까 더 심각해지는 거, 저는 알거든요. 그리고 얼마나 미안해하는지도 느낄 수 있고요. 그녀가 늘어놓는 온갖 깨달음의 말들이 사실은 우렁차게 ‘미안해, 미안해, 용서해 줘’라고 소리치고 있다는 걸 저는 잘 알아요. 그 쑥스러워하는 그녀만의 진실이 저는 귀여워요.”
서로 귀여워하는 관계는 막강하다. 존재를 향한 너그러움과 연민이 함께할 때 우리는 잠시일지언정 안전과 자유를 동시에 느낀다. 대체로 우리가 누리는 안전은 약간의 지루함을 동반하고 불안 없는 자유란 아주 드물다. 그런데 귀여워함이 선사하는 넉넉함에는 함께 가기 어려운 두 즐거움이 사이좋게 어우러진다. 서로를 귀여워하는 순간은 내내 찾아오거나 끝없이 지속되지 않는다. 귀여워하기 역시 우리가 다다라야 할 목적지이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안식처는 아니기 때문이다. 귀여워하기는 실천이다. 우리가 배우고 실습하고 익혀야 할 행위이자 상태다. 치유처럼 말이다. 이렇게도 말해 볼까. 함께 귀여워하기는 치유의 꽤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이서희<상대 결점조차 감싸주는 한마디 “넌 귀여워”>2018년6월4일이서희의 사랑의지도5

나의 취향이 궁금하다가 귀여운 남자를 탐구하다가 <“넌 귀여워”>를 배운다. 새롭게 환기한다. 세상에 귀여운 남자가 참 많다. 나를 위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하하하. 한동안 남자라는 이성에 대한 편견의 안경 때문에 삶이 더 팍팍했다. 이제 열 받는 남자 말고, 기분 나쁜 남자말고, 귀여운 남자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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