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용기 역시 누군가에게 기대어 있음을
용기를 내고 싶다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거라고 갔는데 결국 쥰을 만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윤희는 어쩌면 서울로 이사를 가지 못했을지 모른다. 새봄이 만들어 준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은 윤희에게 필요한 용기가 혼자 가져야 하는 용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마사코 고모의 용기, 새봄의 용기, 경수의 용기, 료코의 용기, 그리고 쥰과 윤희의 용기.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야 하고, 용기가 될 수 있다. -한채윤님 1월2일 페북게시물(영화 윤희에게 리뷰) 중
나에게 글쓰기란 ‘용기와 도전’이다. 이때 용기란 어느 날 불끈 생기는 용기가 아니다. 출발선 상에서 두 주먹 꽉 쥐게 만드는 힘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에게 용기란 오늘 하루를 ‘여느 날처럼 아무렇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이다. 특별한 결심이 아니라 수많은 인생 가운데 보이지 않을 점 같은 하루로 삼을 수 있는 힘이다.
하루 하루의 글쓰기가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나도 모르는 한발을 내딛게 해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한채윤님의 페북 글을 보면서 ‘용기’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 ‘용기가 혼자 가져야 하는 용기가 아님’을.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용기가 나 혼자만의 용기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멈칫했다. 나는 늘 잊는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있음을. 나의 용기 역시 누군가에게 기대어 있음을.
새해 시작을 몸이 아픈채로 누워서 시작했던게 화가 났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실타래 뭉치처럼 꼬여있는 기분이었다. 서 있기 힘들었던 나는 어젯밤 목욕탕에 의자를 들여 놓고 앉아서 세상 가장 심란한 샤워를 했다. 병원을 다녀왔다. 나는 아주 심란하였으나, 의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주었다. 나도 의사가 된 것처럼 수많은 환자들 속에 나의 위치를 따라가며 약을 받고 한의원을 들러 침을 맞고 출근을 하고 오전 회의를 마치고 조퇴를 했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은 하나같이 쉬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지난달 수술 후 한달을 쉰 동료가 오늘 첫출근을 하였고, 나머지 동료들도 이것 저것 아픈 몸에 오늘 저녁에는 중요한 일정까지 있는데, 내 몫까지 잘 할테니 빨리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아우성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P는 아이들 방학이 시작하면서 아주 많이 바빠진다. 학기중에는 아이들이 방과후에 오지만, 방학중에는 오전부터 아이들이 오기 시작하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지경이다. 아파서는 안되는 때인거다. 그러나, 아파서 되는 때가 언제 있을까. 다들 각자의 자리를 다시 잡았으니, 이제 나의 최선은 치료에 전념하고 꽤 많이 회복해야하는 것이다.
점심을 초밥에 매운탕을 시켜 먹고, 약빨 잘받으라고 기운을 밀어넣어 약을 삼켰다. 나의 허리도 이제 2기에 들어선 모양이다. 새로운 증상과 새로운 통증에 적응해봐야겠다. 조금 더 천천히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용기를. 동료들이 내어 준 용기처럼.
#용기#윤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