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예능

by 붉은낙타

언제부턴가 tv 속 예능, 혹은 교양 프로라 불리는 화면에 역겨움을 느꼈다. 익숙한 남성mc들에, 줄지은 남성guest의 모습이 지겨웠다. 한명씩 낀 여성 guest의 역할은 가끔씩 뭘 몰라 의아해하고,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은 무언가를 몰라 알려줘야하는 대상이었다. ‘재밌는 뭔가 없나’ tv를 볼 때면 나는 채널 1번부터 올라가며 유목민이 되어 이거 찔끔 저거 찔끔이었다. jtvc신년토론회 역시 화면에 자리잡은 패널의 모습만으로 한숨이 나왔다. '한국정치는 무엇을 바꾸나'는 '몰라서 못바꾸나' 되묻고 싶었다. '알면서 안바꾸는것부터 먼저 고치지 안그래?‘라면서 어김없이 채널을 돌렸다. 그런 ’tv불신‘의 나에게 <아무튼, 예능>이 다가왔다.


<아무튼, 예능>의 저자 복길은 트위터 계정의 이름이라고 한다. ‘한반에 대여섯은 있었던 pd가 장래희망인 사람이었으나, pd는 방송을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란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결혼이란 제도에 역정을 낼 뿐 딱히 비혼으로 살아갈 의지도 없는 무위의 상태인 그는 어른이 되면 직관적으로, 본능적으로 선택한 것들이 다 옳은 것이 되는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예능>은 ‘삶의 순간순간 나태함이자 두려움, 어딘가 죄스러운 물건이면서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인 tv를 통한 복길의 말하기’인 셈이다.


이 <아무튼, 예능>이 지겹지 않고 시시콜콜 내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무슨 이유였을까. 무엇보다 ‘파닥파닥’ 움직이는 복길의 생활 이야기라 그랬던 것 같다. 중심 테마는 예능이었지만, 예능과 함께 한 복길의 이야기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의 이야기엔 우리의 이야기, 사회의 이야기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복길과 다른 사람이지만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순간 순간이 있었다. 복길의 엄마와 할머니의 갈등, 대학가면 예뻐진다는 속설, 자기만의 조용한 투쟁으로 커리어를 일군 여성멘토, 가장 재밌었던 노래방의 질서와 문화, 형제들의 예능, 아줌마예능, 거물이영자, 위대한 쇼맨 김신영.....


<아무튼, 예능>은 예능을 사랑한 복길의 러브레터다, 복길은 ‘조금은 서글프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지나간 시대와 시간, 과거의 가치관을 묻고 추모한다.‘ 나는 그 러브레터 속에서 복길이 느낀 답답함과 꺼림직함, 반감, 거부감, 화남에 충분한 공감을 하였다.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복길의 마음에 ’그래, 그렇지, 나도 그랬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tv가 복길의 삶에 해방구였던 만큼 복길의 바램 또한 절실했다. ’나와 좀 더 닿아있고, 닮아있는, 세상엔 몇 없는 스피커가 필요‘하다는 외침에 나도 함께 힘을 실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내가 대상화‘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숨기고, 다르게 말하고, 재미있게 위트있게 꾸며도 당사자는 결국 아는 것이다. 뭔지 모를 기분나쁜 감정의 끈이 어디인지 끝을 따라가 본 것이었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복길은 이야기한다. ’죽기 직전까지도 한국 방송의 가장 열렬한 시청자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복길의 그런 결심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복길은 책을 쓰는 사이 20대에서 30대가 되었다. 그리고, 2019년 연말시상식을 끝낸 예능은 또 달라졌다. 복길의 기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tv유목민에서 정착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둘 늘었으면 좋겠다. 나도 tv를 꽤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과 함께 나의 시간도 흐른다.


#아무튼예능#티비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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