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열기
아이들보다 몇 시간 먼저 일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새벽의 거실은 집 안에서 확보할 수 있는 독립적인 시공간이면서 어지간해서는 침해받을 일이 없어 더욱 소중하다.
최근 몸의 리듬이 무너져 흐트러진 아침 루틴을 다시 잡아가려니 다소간 저항이 느껴졌다. 입도 자주 헐고 머리를 당기는 두통이 따라다녔다. 핑계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겠다 싶어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 늦추어서라도 나만의 시간을 찾고 있다.
요 며칠 아침에 거실로 나오면 살짝 열어놓은 창틈 사이로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와 한기가 느껴진다. 밤새 비가 내린 바깥 하늘은 어둑하다. 물을 끓여 차 한 잔을 놓고 오늘을 가늠해 본다. 우선순위의 할 일과 만남 등 나의 하루를 채우고 남는 빈칸을 찾아본다. 필사를 하고 책을 읽다 30분 정도 사이클을 돌리다 보면 아이들이 일어날 시간이 된다.
알람이 울리고 두 방을 오가며 아이들을 부른다.
첫째는 갈수록 깨우기가 힘들다. 수차례 흔들고 부르고 스멀스멀 짜증이 밀려와 목소리가 날을 설 때쯤 좀비처럼 어기적 걸어 나온다. 본인 말로는 성장기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깨우다 지쳐 앞으로는 세 번만 부르고 말겠다고 선언했다. 지각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텀을 두고 세 번 부른 후에 조용히 기다렸다.
순간 양육 전문가가 이런 방식을 솔루션으로 제시하는 것을 영상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났으나 의도는 에미의 에너지 저하였다. 세 번 부르고 시간이 흐르니 드라마 '추노'에서 본 듯한 인물이 식탁 앞에 앉아있다. 시간을 확인하니 전날 일어난 시간보다 고작 5분 정도 지나 있었다.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아침을 시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수저를 드는 것을 확인하면 욕실로 향한다.
얼마 전 물온도를 채 맞추지 못하고 찬물에 머리를 적셨는데 잊고 지낸 오래 전 감각이 소환되는 기분이었다.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멍하니 있을 때 누군가 단단하게 잡고 일으켜 세우는 느낌. 마음의 준비를 해도 차가운 물살에 놀라지만 잠시 지나면 그 온도에 익숙해진다. 머리를 감는 동안 머릿속이 깨끗한 공기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머리 쪽이 찬 것이 건강에 좋다고도 하고 체질상 얼굴로 열이 오르는 편이라 상쾌한 느낌이 한참 지속됐다.
아직 반팔도 그럭저럭 괜찮은 기온이라 그렇겠지만 덕분에 빈 속에 마시는 모닝커피 없이도 맑은 기운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어 만족스럽다. 점점 날씨가 추워져 머리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이 의식은 하루를 여는 스위치가 될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