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식도락

잠시 멈춤

우리의 행복한 시간

by 하우

당황스러웠다.

일을 하기 싫거나 처벌받은 것이 아님에도 문을 닫아야 하다니. 거리 두기 단계가 상향되면서 실내체육시설에 해당하는 남편의 영업장도 문을 닫게 되었다. 강제 조치라 거스를 도리도 없었지만 자영업자만 감수해야 하는 억울함에 대한 불평은 안으로 삼켰다. 우리뿐만 아니라 저마다 무엇인가를 감내하며 소리 내지 않고 있는 사회 분위기였다. 집 밖은 불안과 경계, 원망의 공기가 이제는 비교적 관심 순위에서 밀려난 미세먼지처럼 뿌옇게 사람들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모두가 힘든 시기라 했지만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체감했고 그것을 공평하게 만들기란 불가능했다.

이렇게 된 김에 모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담담한 남편의 말이 고마웠지만 입을 다물었다. 마이너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일정이 사라져 버린 하루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일월 단위로 일정을 계획하고 빠트림 없이 꼼꼼하게 살피며 순조롭게 일을 마쳐야 마음이 편했다. 인심 쓰듯 넉넉히 주어진 시간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것도 네 식구가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 6주라니. 몸에 힘이 들어가며 비상상황이라는 생각에 잔뜩 긴장되었다.




모처럼 강제적으로 주어진 긴 휴가를 집 안에서만 잘 보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빠가 일요일이 아닌 날에도 출근하지 않고 계속 집에 있다는 사실에 놀이동산에 도착할 때처럼 흥분했다. 남편도 평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은 것을 늘 아쉬워했다. 남편은 몸을 사리지 않고 아이들과 놀아주었고 아이들은 아빠 위에서 볼풀장에서 마냥 뒹굴었다. 원래도 에너지가 넘치던 두 아이의 목소리와 움직임에 지레 겁을 먹고 간간히 과일이나 간식거리를 아랫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오기도 했다. 여행도 갈 수 없고 공연, 외식은 당연히 배제되었다. 그렇다고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지나온 어느 시기보다 나의 역할과 업무가 분명해졌다.



오전에는 방에 틀어박혀 원격 수업을 하고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학원을 띄엄띄엄 가고 있는 초등학생 딸과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방학 때나 작성하던 하루 일과표를 만들었다. 코로나 시작 때부터 한 달 단위로 실행해 오던 챌린지 리스트도 재정비했다. 어려워하는 과목은 같이 문제집을 골라 풀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뽑아 보았다. 보드게임도 잔뜩 쟁여놓았다.

신문지를 뭉쳐 양면 테이프 붙인 베란다 창에 던지며 농구를 하거나 홈트레이닝을 하며 땀을 흘렸다. 젖먹이 시절은 지났으니 이렇게 온전히 같이 보내는 시간이 또 오겠나 싶었다.

생활이 단순해지면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해지기 마련이었다. 끼니때가 되면 메뉴가 무엇인가 궁금해하며 반짝이는 세 명의 간절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아이들은 밥을 먹고 돌아서면 이내 간식을 찾았다. 남편은 마음을 아예 비운 듯 평소에 유지하던 식단도 접고 일반식에 야식까지 즐겼다. 배달 음식도 하루 이틀이지 일회용품으로 늘어난 쓰레기와 가족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결국 신혼 때 숱하게 뒤적이던 손때 묻은 요리책을 꺼냈다. 영양소의 조화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르는 레시피를 찾아 인터넷 블로그를 뒤지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 강사에서 급식실 조리사로 전업한 기분이었지만 분주한 주방이 더 바빠지게 되었다. 가득 채운 냉장고의 식재료들은 일주일이면 뭘 해 먹나 소리가 절로 나오게 텅 비었다.


둘째는 누나와 달리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아 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요리도 해 보고 싶어 했다. 나무 꼬치 중앙에 제대로 꽂히지 않아 프라이팬 위에서 들쑥날쑥 익은 소떡소떡과 얼굴이 까맣게 타버린 뽀로로 쿠키에도 아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예쁜 그릇에 플레이팅 하는 것이 요리의 목적이던 나는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맘카페나 엄마들 모임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 중에 ‘독박 육아’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면 한탄 섞인 푸념 뒤에 으레 격하게 공감하는 위로의 피드백이 잇따랐다. 그런 남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무심하지만 적당한 성의를 담은 짧은 공감의 말을 건네고는 했는데 문득 누군가가 너는 늘 독박이지 않냐며 반문한 적이 있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아이들이 잠든 늦은 시간에나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집안일과 육아에 적극적인 편인데도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만 함께 할 수 있어 나 혼자서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처음에 남편이 한 달 넘게 출근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휴가를 반납하고 야근과 특근이 줄지어 기다리는 기분이라 한숨이 나왔다. 생활비는 줄이지 않았지만(심지어 엥겔지수의 정점을 찍었다)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코로나가 종식될 기미가 없는데 이런 일이 얼마나 더 반복될까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삶의 목표가 거창한 것이 아니고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것이라 생각하니 그 시간이 빨리 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인생의 쉼, 식구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시간. 집 밖의 시간은 멈춰 버렸지만 우리의 시간은 어느 때보다 밀도 높게 채워져 갔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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