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보낸 마지막 주의 이야기
공항에서 좀 울었다. 씩씩하게 인사하고 별거 아닌 것처럼 안녕, 하고 왔는데 가만히 앉아서 스무디 마시다가 울었다. 오클랜드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은 Pita Pat이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유난스럽게 눈물이 찔끔 났다.
그날도 새벽 일찍 일어났다. 며칠째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눈도 떠졌다. 마침 해가 길어지는 중이었는데, 그 덕분인지, 때문인지 그 주 내내 새벽처럼 눈을 떴다. 솔직히 안 피곤했다면 거짓말이다. 뜬금없이 한 시간이나 일찍 등교를 하질 않나, 엄청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일어나서 아침에 뜬금없이 커피를 마시질 않나. 마지막이라 싱숭생숭한 마음이었는지, 정말 이유 없이 일찍이 일어났었다. 어쩌면 조금은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말로는 미련 없다, 다 끝났다 하며 거리를 뒀을지라도 말이다.
마지막 맛차라떼도 마셨다. 코코넛 밀크를 진하게 스팀 한 베이스에 꿀과 마차 파우더를 넣고 달달하게 휘핑한 백인들의 마차라떼였지만 일을 시작하고,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고 난 이후로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음료이자 공간이었는데,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잔 들이켰다. 따끈하게 한 잔 제대로 우려서 나온 마차를 마시며 지난 시간을 돌이켜 봤다. 마지막인데, 후회하지 않을까? 더 해야 하는 건 없나, 더 챙겨야 할 사람은 없나? 떠오르는 사람은 정말 많았다. 이미 떠난 사람도 있었고 충분히 찾아갈 수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발길이 가는 데로 사람들을 만났다. 내게 도움이 되어준 인연들을 찾아서. 오랜만에 술도 한 잔 하고 받은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차 한 잔 가지고 찾아가서 하루 종일 수다도 떨었다. 여느 날의 우리처럼 라면 한 그릇에 밥 한 그릇, 따뜻한 국 한 모금에 갓 지은 밥 한 그릇을 먹기도 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휴대폰 회사의 지독한 장난인지, 나는 일주일만 더 지내면 되는데, 내 휴대폰 요금제는 단 5일 만을 두고 동나버려서 그때만큼 휴대폰과 거리를 두고 지냈던 게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마침 학원에서는 아이들과 소셜미디어의 거리두기, 숏폼 콘텐츠가 주는 영향 따위를 토론과 논쟁의 주제 삼아 배우는 중이었다. 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자. 덕분에 마지막 한 주를 정말 재밌게 보냈다.
나는 그 주 일요일 아침 6시가 조금 넘어 보딩을 시작한 비행기에 몸을 싣고 호주로 향했다. 그 비행기가 향하는 곳은 브리즈번이었는데, 그곳은 따지고 보자면 경유지에 불과했다. 어쨌건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것으로 하고, 아무튼 내 휴대폰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다시 말해서 나는 전화, 데이터, 문자까지 하나도 되지 않는, 요즘 시대에 정말 하나도 쓸모가 없는 깡통기계와 함께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도서관을 애용했다. 역설적이게도 도서관에 머물게 된 계기가 와이파이 때문이라지만, 그 시간 동안 전부 인터넷 세상에 날 담가둘 수 없었기 때문에, 와이파이를 위해 간 그곳에서 책도 읽고 공부도 했다. 데이터 없이 길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사실 벌써 반년이나 살던 동네였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을지언정 내 몸은 전부 알고 있었다.
빈 깡통이 된 기계를 가지고 처음으로 간 곳은 헌책방과 처음 가보는 카페였다. 직선거리로 10분이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에 있었다. 구글 지도 없이 세상에 혼자 던져진 기분이란, 둥지 밖으로 처음 나온 메추리 같았다. 언제든지 메추리알 조림이 될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동양인 여자애가 혼자 헤매고 있어도 말 거는 이 하나 없는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미드에 나오는 전기톱 살인 사건 같은 범죄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책으로 가득 찬 저택 앞에 도착했다.
남들이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책 구경을 위해 우산을 손에 쥐고 떠난 나들이는 정말 즐거웠다. 비가 정말 조금 내렸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충분했다. 책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는 거의 오지 않았고 친절한 뉴질랜드 길거리에는 천장이 있었다. 카페로 향하는 길이었다.
걷다 보니 전에 점찍어뒀던 카페가 눈에 띄었다. 작은 동네 카페였는데, 창문이 정말 깨끗해서 비가 와도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레몬생강차를 한 잔, 그리고 당근 케이크를 한 조각시켰다.
머지않아 비가 내렸다. 세차게 내렸다. 뜨겁게 데워서 나온 차 한 잔과 레몬 아이싱을 얹은 당근케이크, 거기에 다이어리까지 앞에 두고 밖에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한데 왜 이렇게 힘들어했을까, 싶었다. 후회가 쓸데없다는 건 알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는 없어서 생각에 잠겼다. 곧장 빠져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잠깐 생각하다가 이내 쓰던 일기를 마저 썼다. 깊은 생각에 빠져들지 않았다.
일기를 다 쓸 무렵에 차도 바닥을 보였다. 마침 3일 치 일기가 밀려서 문장을 생각해 내느라 애쓴 머리도 과부하가 걸리기 직전이었다. 한 줄 남긴 그날의 일기를 덮고 달달한 레몬 향이 끝내주게 농축되어 있는 마지막 한 모금을 넘겼다. 반바지를 입어서 싸늘해진 다리를 슬쩍 쓸어보고 마지막으로 카페 안을 둘러본 후에 나왔다.
해가 말갛게 떠 있었다. 구름도 하얗고 하늘도 파랗고 방금까지 비가 추적추적 왔던 건 잊어버리고 맑게 개어있었다.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다음날엔 내 마지막 3개월의 숨은 주역인 언니와 함께 마차를 마시러 갔다. 예상치 못하게 맛있는 국수 한 그릇을 대접받아버려서 내가 봐둔 일본식 디저트집을 갔다. 데이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만 않았더라면 완벽했을 보답 맛차였는데, 삼성페이 실패하고 다음날 다시 대접하게 된 것은 좀 계획에 어긋난 마무리였지만, 어쨌건 맛차 한 잔 하고 헤어졌다.
한두 번 문제가 있었는데, 어떻게 시간이 지나서 금요일이 되었다. 매주 금요일에는 학원 행사가 있는데, 졸업자의 연설이 주인공이다. 졸업자-나-의 연설이 참 감동적이었다. 하하. 장난이고 이 졸업식도 19번을 봤는데 매번 지겹고 시간이 영겁 같지만, 어쨌거나 잘 마치고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선 마지막 밤을 즐겼다. 밤이 짧을 줄 알았는데 참 길었다.
토요일을 공항에서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언니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까 씩씩하게 인사했던 건 다 잊어버리고 눈물이 찔끔 났다. 도합 40 킬로그램이 다 돼 가는 수화물 두 개를 끌고서도 눈물이 났다.
다 장난 같다가도 공항 입구를 보면 현실인 걸 깨닫게 되는 어떤 작용이 있는 건지, 벌써 세 번이나 지나쳤던 국제공항인데도 느낌이 새로웠다. 실제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여행을 떠나는 길이었기 때문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할 것 같은 기분과 지금 떠나면 언제 또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머리가 서로 부딪혔다.
정말 마지막이었다. 이미 한 번 떠났다가 돌아온 경험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여전히 한국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체크인 카운터를 지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안검색대에서 짐 검사를 마치고 3시간 반의 짧은 비행이 끝난 후의 나는 호주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