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집으로, 나를 기다리는 집으로 가자

by 하얀














단연코 완벽하지 않았던 8개월의 시간이 끝났습니다. 살 떨리는 추위를 뒤로 하고 떠났던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하나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건 눈물 나게도 힘들었던 이삿날 이후였다. 집에 누군가의 침입 흔적이 있었다. 분명 집을 나가기 전까진 잠겨있던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집에 살던 세 명 모두 공포에 질렸다.

그 길로 집을 나왔다. 누가 집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덜덜 떨던 새벽이 지나고 다음날 해가 밝자마자 집을 나왔다. 아무도 모르게 이사를 했다. 셋이 살던 집에 나만 혼자였다. 나만 외딴 동네에 홀로 남겨질 운명이었다. 다들 남자친구들 집으로 도망을 가고 20살 생일을 일주일 남겨둔 19살의 나만 그 집에 남겨져 기나긴 시간을 버텼다.


그날 새벽처럼 눈물 났던 시간이 없다. 해가 떠도 안심이 되진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나갈 생각만 했다. 이미 밤을 새워서 피곤했지만 친구들과 점심도 먹고 마치 안전한 삶인 척했다. 그 집의 묵직한 현관문이 유달리 더 무거워서 날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언니를 데리러 가는 길이 정말 멀게 느껴졌다. 언니와 함께 짐을 모두 옮겼다. 2시가 체크인이었는데,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방을 얻고 불안한 잠자리가 지겨웠던 나는 벗어나기 위해 다른 방을 구하러 갔다.


뻔하게도 방을 얻는 건 실패했다. 한국인 혼자, 그것도 내가 가진 돈으로 안전하고 편한 집을 찾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라 밖에서 정말 역겨운 경험을 하고 나니, 일을 하던 에너지도 공부를 하던 에너지도 한순간에 모두 무너졌다. 애써 열심히 가꿔가는 중이었는데 전부 지겨워지기까지 단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집을 떠나와서 시내에서 한참 멀리도 살아보고, 미국에서도 살아보고, 일주일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는데, 그 일주일이 전부 버거워서 다 그만하고 싶었다. 그래서 돌아가기로 했다.



결정이 쉬웠냐고 물으면, 아니, 어려웠다. 1년짜리 비자로 편도 70만 원 들여서 온 이 나라는 한때 그리웠고 한때 즐거웠으며 대부분 평화로웠다. 조용하게 지켜만 봐주는 나라에서 한시라도 뒤처지면 뒷일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이 쉬웠을 리가 없다. 그래도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결정이 있다.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결정이 있다. 결국 소중한 인연을 잃게 되었다 해도 해야만 했던 결정이 있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두고 간 것들이 있고 쉬고 싶어서 역설적이게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도 있다. 전부 내 선택이고 후회가 쓸모없다는 걸 잘 안다. 전부 한편으론 아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끝내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