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속에 사는 걸까
남들보다 잘났다는 착각
한 달이 넘게 손으로 글을 쓰지 않으니, 이제야 생각을 할 용기가 난 건 우연이 아니다. 남의 죽음, 사랑과 이별, 홀로 겪지 않은 –남과 공유했던 감정- 에 관해 글을 쓰는 일이 역겹게 느껴진다. 정말 좋게 포장해서 양심에 찔린다, 라고 표현하고 싶고, 다른 말로는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일까, 해서 생각을 글로 쓰는 일 자체에 망설임이 있었다.
근데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책과 음악, 미술과 무용 등 예술에서 고통과 반전과 사무침이 소재가 되는 것은 흔하다.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글은 종이와 문자로 얄팍한 사건을 이만큼 입체적이게, 혹은 거대한 감정을 납작한 종이 위해 표현해야 하는 예술이라 그런지, 더 어려우면서도 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작가 자신을 사용하여 타인의 공감과 눈물로 책을 쓰기도 하고 주변인의, 혹은 영화나 음악으로 쓰인 사연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나도 책과 음악에서 겪은 간접적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겪는 것과 한참이나 감정의 썰물의 높이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솔직히 평생 갈 줄 알았던 지난날의 연애가 막을 내렸을 때도, 까 놓고 말해서 진짜 죽을 줄 몰랐던 죽음 앞에서도 나는 회피를 택했다. 전부 떠나오는 것이 내게 가장 쉬운 해결책이었다. 차단하고, 지우고, 그의 집에서 벗어나는 길은 가장 빠른 ‘잊는 길’이었다.
여행길에 오르는 것만큼 새로운 일들이 펼쳐졌다. way가 방법이자 길인 이유를 그제서야 이해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처음 겪어보는 세계로 걸어 들어가 보니 영원히 즐거울 것 같았다. 여행은 끝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기 전까진 진심으로 행복했다.
“10월의 어느 멋진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한국, 울산의 내 방에 앉아 생각하기를,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은 전부 거짓 같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난 8개월 하고도 10일을 넘게 늘 누군가와 부대끼다가 혼자 방 안에 누워있으니 음, 흔히들 말하는 백수의 삶이라는 게 이건가 싶고, 솔직히 안주하는 중이다. 죽음, 이별, 두고 온 사람들은 전부 잊고 ‘학교로 돌아가면 아마 전부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일기를 안 쓴지도 한참이고 이제야 손에 샤프를 쥐기 시작했다. 손에 익었던 필기도구들이 어색해져서 글씨의 모양새도 끔찍했다. 글을 쓰는 일을 반평생 동안 해 왔는데, 이만큼이나 어색해질 줄은 몰랐다.
상업작가도 아니고 이렇다 할 유명세를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어떤 날엔 문득 내가 글을 쓰는 것에 진심이라고 생각이 든다. 남겨둔 일기가 눈에 밟혀서 밤마다 뒤척일 때나, 고성능 노트북에 설치한 것이라고는 전자책, 전자책 리더, 한글, 워드뿐인 것을 볼 때면 특히나 웃기고 그래도 글을 쓰는 일에 진심이구나 싶다.
다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남들과 함께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며 생각하는 생물종인데, 그것들을 글로 옮기는 일이 참 어려워졌다는 게 문제이다. 생각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걱정이 많아서일까?
뭔가를 ‘극복’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일인데, 해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시간이 참 찌질해보인다. 사실 극복이라는 게 침대 밖으로 발을 뻗는 일,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약속 없이도 슈퍼를 가는 일처럼 사소한 일들을 해내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이다, 무기력증이다,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름'들 없이도 한순간에 훅, 하고 뭔가를 해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인간으로 사는 게 내 운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는 이제까지 ‘내일 일어난 재밌는 일을 모르는 것은 내가 세상에 없는 것 보다 더 분한 일이야.’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는데, 이번 생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 중 대부분을 해낸 이 시점에서 나는 뭘 위해 살아가는 가, 고민하자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날 밤에 잠에 들지 못하기도 하고, 그 다음날엔 헬스장에서 2시간을 보내기도한다. 그래서 내 감정이 참 작아보인다. 이리저리 헤매는 게 시기를 놓친 방황 같아서 작아보인다. 작고 사소해서 그것 따위를 글로 써내는 것이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