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9살에 워홀 간 이유
워홀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그리도 많이 오르내리는데, 실제로 실행해 보는 사람은 한 줌일 정도로 아직은 미지의 영역인 곳이다. 그래서 나는 올 한 해 가장 큰 이벤트였던, 2025년에 내게 발생한 모든 사건들의 말하자면 원인, 다르게 보면 원흉인 워홀이 어땠는지 말해볼까 한다.
워홀의 마무리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정리이다.
워홀의 시작을 간결히 나타내자면 그것도 정리이다.
워홀은 뭘까? 워홀은 워킹홀리데이의 준말로, 해외의 어떤 나라에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일하며 그곳에서 돈을 벌고 휴가를 즐기는 형태의 여행이자, 비자 상태의 이름이다. 관광비자, 취업비자처럼 기간이 있고, 영주권과 시민권처럼 그곳에서 살아 볼 수 있으며, 이 모든 비자들과의 차이점이라면 한 번 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다시 취득하는 것은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워홀 나라를 고를 때 신중해야 한다.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 그것도 30살 전후로 기회가 사라지는 선택을 언제, 왜 할지, 가서 무얼 할지 생각해 보고 질러야 한다.
워홀 비자를 받기 전까지도 몇 개의 절차가 있지만, 받고 나면 이제야 시작이다. 사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입국하기 직전까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이민성의 변덕이기 때문에 입국심사장에서 발을 내딛기 전까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나는 20살 마지막날에 워홀 비자를 가지고 나라를 떠났고, 떠나간 곳에서 20살이 되었으며 약간의 아쉬움과 후련함 한가득을 안고 왔다. 내가 이 나이에 떠나며 목적지로 뉴질랜드를 고른 이유는 명확했다. 안전한 영어권 나라, 내가 사랑하는 호주의 이웃나라, 언젠가 정착을 하게 된다면 마침내 그곳이었으면 하는 나라의 친구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문으로 듣기에 '취업시장에서 싫어한다며 매도'하는 호주에서 워홀을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처음부터 하고 다녔던 말이 있는데, 호주와 뉴질랜드는 거리도 가깝고 역사가 비슷해서 '연습'을 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3년까지도 살 수 있는 호주와 자리 잡기도 힘들면서 비자 기간은 1년밖에 안 주는 뉴질랜드를 오가며 일하는 건 현지인들이나 나 같은 방랑자들이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하여 조금이라도 쉽게 호주 영주권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일자리, 인프라, 급여 등등 여러 면에서 더 유리한 호주는 영어권이라서 나름 접근이 쉽다는 장점까지, 나 같은 사람들이 몰리기 아주 쉬운 구조이다.
나는 그래도 나름 덜 현실적인 이유로 호주로 가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울산에서 나고 자라서 대학을 전주로 갔는데, 바다와 가장 가깝고 불이 꺼지지 않는 중공업 앞의 내 방과 자동차, 지금은 화학단지의 불빛까지 더해져서 반짝이지만 도통 속을 모르겠는 동네에서 자라다가 처음으로 울산으로 벗어나게 되었을 때 기대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치즈 온 더 트랩을 보고 자란 세대의 스테레오 타입은 당신들이 상상하는 이상일 것이다.
울산이 작은 항구도시, 돌고래가 보이는 해안도시, 휴양도시 이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정이 있고 내가 자란 동네는 마침 조용하고 사건사고가 없는 곳이라 나는 만족하면서 자랐다. 그럼에도 잠깐의 여행으로 다녀온 호주를 계속 그리워했던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평선, 끝이 없이 넓은 공원, 낮은 인구 밀집도였다. 전주로 대학을 가며 그 갈증, 잔디밭과 산이 아닌 숲 혹은 운동장이 아니어도 달릴 수 있는 길 따위, 을 해결할 수 있겠다고 기대한 것도 있다. 대학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있지만 실제로 내가 다니는 학교는 평지에 있고 근처에 강이 있어서 기대가 합리적이었다. 다만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내 욕심이 크겠지.
중학교 3학년에 떠난 여행 때문에 꾸기 시작한 호주살이의 꿈은 대학에 입학하고 첫 1년을 뉴질랜드 워홀에 바치며 끝난 줄 알았다. 시드니에 5년 만에 다시 갔다. 같은 숙소, 같은 여행지를 다시 갔더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벅차다, 감회가 새롭다, 이런 말들로 표현하기에 아까운, 기억의 끝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정이었다. 5년 전에 공항을 떠날 때 다시 언제 올 수 있을까, 과연 다시 올 수는 있을까, 아쉬움을 절절하게 남기며 떠났는데 간절히 원하고 보니 결국은 이루어졌구나, 싶었다. 내가 떠나고 한 달이 안 되어서 락다운, 전부 폐쇄하며 국경이 닫혔었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극적으로 남기도 했다.
아무튼 호주 이야기를 왜 꺼냈냐면, 이 워홀의 목표는 결국 호주였기 때문이다. 한 학기 휴학이 아니라 꾸역꾸역 1년을 채우게 된 것도 호주 여행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내 목표는 호주 여행을 하기에, 다음에 호주로 워홀을 떠나면 그땐 더 순탄히 적응하기 위해 영어만큼은 가장 어릴 때, 내가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배워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목표는 돈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돈을 쓰는 워홀을 떠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