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우울한 엄마 고양이
산전우울증 혹은 산후우울증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요? 내심 저의 아내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가 정신건강 영역이고, 아내 역시 유아교육학 박사였기 떄문에 이와 관련된 많은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직접 경험해보니 우리의 생각과 지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었습니다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로 당황하는 아내, 그리고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우리 부부는 각자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순간들을 여러 차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지나면서 아내는 가끔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누군가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죠. 그냥 갑자기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들이 폭풍처럼 아내의 마음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내의 말을 열심히 듣는 것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내의 마음이 충족되지 않았죠.
원래 외향적인 성향을 가진 아내는 사람들과 집단 안에서 활동을 하며 에너지를 얻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출산과 육아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되면서 에너지를 얻을 기회가 줄어들었죠. 아마도 거기에서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들이 찾아 왔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도보 5분 거리에 아내의 본가가 있었기 때문에 장모님과 처제가 자주 찾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던 것은 아내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덕분에 조금은 마음 편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죠.
아내가 감정적인 문제로 힘들어 한 것과 달리, 저는 육아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부성애가 없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제 내 좋은 시절은 다 갔구나.’하는 속상함도 있었습니다. 내가 중심이던 생활들이 점점 사라지고, 모든 행동이 가족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적인 동요가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죠. 그래도 그 시기를 견디고 나서 보니 지금은 우리 가족이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고,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우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완전히 막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답이라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노력을 통해 그 시기가 줄어들 수 있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우리 부부의 경험에 비춰보면 역시 자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되, 비난하지 않고 위로하는 것은 부부가 할 수 있는 좋은 대화 패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 상대방을 위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남편과 아내 밖에 없을 겁니다. 아마 연애 혹은 신혼시절부터 부부가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면, 육아 때문에 힘든 시기에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생각하는 대화는 단순히 ‘말’만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향한 눈빛, 스킨십, 몸짓, 말투, 억양 등 비언어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대화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런 것들이 익숙하지 않다면 짧은 글을 적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요? 의외로 편지에 적힌 짧은 한 문장으로 인해 얼어있던 상대방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기도 하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