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따에서 웃음꽃이 활짝
우붓에 묵는 마지막 날, Tegalalang Rice Terraces 뜨갈랄랑 계단식 논뷰를 보며 스윙을 타러 간다. 이름에 테라스가 붙어 있는 곳이 가장 규모가 크고 원조이고 그 옆에 옆 옆까지 최근에 사진만 잘 나올 수 있게 소규모로도 운영을 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자마자 루왁커피를 포함한 14가지의 차를 내온다. 아이들은 카페인이 없는 것으로 마시게 했더니 엄마 커피 마시는 흉내를 내며 시음을 해본다.
차도 마셨겠다, 스윙그네를 타러 내려가는데 환상적인 뜨갈랄랑 계단식 논뷰에 탄성이 나온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형을 이용해 계단식 논을 만든 발리인들의 지혜에 감탄도 하고 초록초록한 색상에 안구가 정화되고 눈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바닥을 투명하게 만들어놓아 뜨갈랄랑 논뷰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투명유리. 차 마시는 곳 앞에 나가면 이렇게 투명유리 테라스가 있다.
스윙그네에는 호주 관광객들이 이미 줄을 서있다. 우리도 줄에 합류하였는데 스윙그네 바로 옆 집라인은 타는 사람은 없고 구경꾼만 많은 느낌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친정엄마가 "너희 둘이 스윙그네 타, 나는 집라인 할래" 라며 성큼성큼 집라인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What? 엄마가 집라인을? 스윙그네 줄을 튀어나와 바로 집라인으로 갔다.
"엄마 그거 무서운 거야. 여기에서 출발해서 저 아래 논으로 도착해. 그리고 다시 이곳까지 오려면 저 수많은 구불구불한 계단을 걸어서 올라와야 해"
"괜찮아, 재밌을 거 같아. 이런데 온 김에 하지 언제 해. 엄마가 언제 또 발리를 오겠어"
"엄마, 다시 생각해 봐, 여기서 집라인은 좀 위험할 거 같아" 나의 간곡한 만류에도 엄마가 집라인 직원들 앞에 다가가자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 뒤에 이탈리아 아가씨는
"OMG OMG, 나도 내 남자친구도 집라인 타고 싶은데 막상 타려니까 높이가 10m도 넘어 보여서 너무 무서워서 누가 먼저 타는 사람 있나 지금 30분째 기다리고 있었어. 여기 다들 집라인 타러 온 사람들이야. 첫 스타트를 아무도 안 끊었어" 라며 입을 틀어막고 "너희 엄마 정말 용감해. 멋있어!"
다들 감탄하는데 나는 머리가 복잡했다. 일단 바로 옆에서 표부터 끊고 집라인 직원에게 우리 엄마 보호장비랑 안전장치 제대로 해달라고 오늘이 첫 도전이라고 장비 두 번 세 번 점검해 달라고 몇 번씩 이야기를 하였다. 나의 걱정과 손녀들의 걱정에도 엄마는 밝게 웃으며 엄지를 날린다. 엄마가 집라인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뭉클해졌다.
엄마가 갑상선 암 수술을 하고 난 뒤 위축되고 스카프로 수술한 자국을 가리기 위해 목을 계속 감싸고 다니던 때였다. 사실 그래서 엄마는 좀 쉬었으면 했는데 나랑 손녀들만 보내기 불안하다고 건강할 때 너희들과 해외여행하고 싶다며 매일 운동하며 말리던 나를 오히려 안심시키던 엄마였다.
내가 20대 때 겁 없이 번지점프 하러 다니고 놀이공원에 가도 무서운 거 타면서 난 지금까지 아빠 닮은 줄 알았는데 나는 엄마를 닮았던 거였구나. 그런 나도 애 둘 낳고 혼자 집라인 무서워서 못 타는데 우리 엄마도 스릴을 즐길 줄 아는 분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타국에서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니 엄마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도 있고 엄마가 더 늙기 전에 여기저기 같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모두의 박수와 함성을 받고 집라인을 무사히 탄 뒤 이탈리안 커플은
"너희 엄마가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어" 하며 쌍따봉을 날리고는 남자친구와 함께 다음 타자로 집라인을 탔다. 친정 엄마와 내 딸들과 여행을 하면서 문득 뭉클한 감정이 들 때가 있었다. 내 자식 먹이고 키우느라 엄마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고 무심하게 살았던 때가 많았다. 함께 여행을 하며 젊었을 때의 엄마와 지금의 엄마가 겹쳐서 보이고 어렸을 때의 나와 내 딸들의 모습이 겹쳐서 보였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나, 엄마, 내 딸들은 모두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엄마는 조금 더 할머니가 되어있겠지. 그때도 이렇게 세 모녀가 건강하게 여기저기 여행 다닐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엄마가 괜찮다고 우겨서 온 여행이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발리에서의 하루하루가 소중해졌다.
스윙그네는 나와 첫째 딸이 함께 탔는데 처음엔 눈 꼭 감고 타다가 두어 번 후에 눈을 떠보니 높다란 야자수 끝부분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고 계단식 논이 입체로 보이면서 그 위에서 딸과 함께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8살 첫째도 같은 말을 하였다.
"엄마, 초록세상에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야" 세네 번 스윙 후에 용기를 내어 팔 한쪽도 펴보았다. 자유가 느껴졌다. 우붓이 논과 수풀만 많다고 패스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발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우붓이다. 자연에 폭하고 안긴 기분을 우붓에서 느꼈다.
논뷰로 유명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Tirta Empul (띠르타앰플 사원)으로 출발했다. 성스러운 물이 샘솟는 곳에서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을 인생 샷으로 남긴다고 유명하다는데 세 모녀가 우붓을 떠나기 전 좋은 기운을 얻고 가고 싶었다.
내가 가기 전 찾아본 띠르따앰플 사진은 이러했다.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가. 종교를 떠나 발리인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장소에서 저 물을 이마에 뿌리며 아이들에게도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수영복까지 일부러 챙겨 왔다.
하지만 우리가 띠르따엠플에 도착해서 본모습은 사뭇 달랐다. 아니,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놀랐다.
사람들이 저 위에 물이 나오는 곳까지 지그재그로 빼곡히 줄을 서있고 신께 빌기 위해 여기저기 향을 피운 곳이 많아서 기침이 마구 나오고 물 안이 비좁아 밖에 줄 서있는 사람들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바닥 물만 손에 찍어 머리에 한 번씩 찍어 바르고 소원을 빌었다. 많은 발리인들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곳이라서인가? 물을 머리에 끼얹고 나오는 발리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표정에서 온화함마저 느껴졌다. 마치 올해 할 일 끝냈다. 개운함마저 느껴졌다. 다음에 다시 오면 꼭 다시 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돌아섰다.
오늘은 발리에서 맞는 5살 둘째의 생일이기도 하다. 생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가 이렇게 스펙터클 하게 지나갔지만 늦은 오후에 갔던 꾸따 워터봄 워터파크에서 비로소 아이들의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문 닫기 몇 시간 전에 갔지만 우리밖에 없는 듯 전세 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빠진 직후였다. 라이프 가드들이 아이들과 놀아주며 발리의 꽃인 프랑지파니도 따다 주고 오후 막바지를 불태웠다.
엄마의 건강이 걱정되어 발리에 세 모녀가 함께 오지 못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많은 감정들이 하루에 몰아치니 많은 것에 감사해지는 잊지 못할 하루였다. 엄마가 70, 80대가 되어도 많은 외국의 젊은 친구들이 누가 먼저 타주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첫 번째로 집라인을 탔던 자신감 많고 건강했던 엄마였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갑상선암 수술 자국을 가리느라 더운 발리에서도 목에 스카프를 두르던 엄마는 다음날부터 스카프를 하지 않았다. 스카프를 왜 벗었냐고 묻진 않았지만, 엄마에게도 우리에게도 힐링을 준 여행임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