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제주도 발리 휴양지로도 매력만점
"한국에서는 괌, 사이판, 필리핀, 베트남 등 비행기로 4시간 30분 이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휴양지가 많다. 굳이 7시간의 비행시간을 감수하고 인도네시아 발리를? 아이가 어리다면 더 힘들 비행기에서의 7시간.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수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남아의 매력도 갖추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다른 발리의 매력에 나는 풍덩 빠져버렸다.
여행을 코앞에두고 혼자 아이 둘 데리고 가기엔 멀다며 가족들의 만류가 있었고 걱정이 된 친정엄마가 합류하게 되어 갑자기 3대 모녀여행이 되었다. 이미 아이들 위주로 여행코스를 대략 짜두었던지라 엄마를 위한 여행지는 뭐가 좋을지 비행내내 발리 여행 책자를 들여다보는 나와 달리 외할머니와 손녀들은 좌석 모니터로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며 비행시간을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그 시간을 즐겼다.
발리 덴파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1시간 30분을 달려 우붓 숙소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 되었다. 7시간의 비행보다 1시간 30분 택시 안에서의 시간이 더 지치고 힘들었다. 호텔에서 준비한 웰컴티를 마시고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구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푹 쉬며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숙소 수영장에서 종일 놀고 먹다 간식거리를 사러 밖에 나갔다.
내게 발리의 첫인상은_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 인도가 쭈욱 이어져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간중간 끊겨있고 한두명 간신히 서있을 수 있을 정도로 폭도 비좁아 몇블럭 가다말고 유모차를 숙소에 두고 도보로만 이동했다. 그동안 갔던 다른 동남아 휴양지와 다를 것이 없다고 느꼈고 그냥 가까운 베트남이나 태국갈 걸. 괜히 멀리 왔나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유모차를 밀어야 하는 나이라면 발리의 거리 산책은 힘들다. 인도가 중간중간 끊겨있고 비좁아 성인 한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다.
조금 앞서가던 큰아이가 멈춰섰다. "엄마 발리 고양이인가봐~좀 특이해. 꼬리가 엄청엄청 길고 족제비같이 생겼어" 그냥 길가 흔한 카페의 모습일 뿐인데 사향고양이가 커피열매를 먹고 배설한 커피콩으로 만든 루왁커피(KOPI LUWAK)를 팔고 있었다. 두 마리의 사향고양이들은 줄에 묶여 있지 않은채 낮잠도 자고 놀고 하는게 마치 애완동물 같아보였다.
영화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것들'에서 죽기 전 반드시 맛봐야 할 고급 커피로 언급된 루왁커피라니! 카페 내에 고양이가 배설한 커피똥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원두에 털과 여러가지 것들이 엉켜있는 걸 보고 커피를 하루 세 잔은 즐기는 커피 애호가이지만 마시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후에 발리스윙을 하며 마셔볼 기회가 있었다. 신선한 원두에서 나오는 신맛과 깊고 진한 향의 밸런스가 좋은 커피였다. 이후에도 길거리 카페에서 사향고양이들을 종종 만났다. 발리에선 그냥 흔한 카페의 모습이라니 동물들이 안쓰럽기도 신기하기도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다.
우붓의 명소는 많지만 아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던 몽키 포레스트로 출발했다. 가까이서 보는 원숭이는 무섭다며 엄마는 매표소와 붙어있는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뙤약볕에 야외라 덥다는 이야기만 듣고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워서 갔는데 숲이 거대하고 울창해 몇몇 구간 빼고는 대부분이 그늘이었다. 입장 전, 주의사항이 있다.
1. 원숭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말 것(싸우자는 줄 알고 공격한다)
2. 비닐봉지를 가져가지 말 것(소리나는 것에 민감해 다 뒤지려고 한다)
3. 새끼 원숭이는 사람들 위에도 올라가는데 절대 만지지 말 것(엄마 원숭이가 근거리에서 보고 있다가 새끼 원숭이를 만지면 달려든다)
4. 음식을 주지 말 것
숲속에 원숭이들이 여기저기 자연방사되어 마치 관람객들이 원숭이 마을에 온 기분이 들었다. 꾸벅꾸벅 졸거나 무리를 지어 공원에서 놓아둔 먹이를 먹거나 원숭이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며 엄마 원숭이들끼리 모여앉아 털을 고르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람객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가방과 휴대폰을 만져보는 원숭이도 있었다.
인구의 88%가 이슬람교를 믿는 인도네시아지만 발리는 힌두교의 영향이 강해 거리 곳곳에 힌두교 석상들이 많이 보인다. 그 중 '하누만(Hanuman)'이라는 원숭이 신이 가장 인기 있는 신이라 발리에서는 원숭이가 귀하고 신성한 동물로 대접받고 있고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몽키 포레스트이다. 원숭이 신이 모셔져있는 신전도 따로 있을 정도니 말이다. 관리인들이 사과와 바나나 등 먹을 것도 풍족히 놓아두지만 호기심많은 원숭이들이기에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5살 둘째와 원숭이의 사진을 찍으려는데 갑자기 새끼 원숭이가 빠르게 다가와 아이의 무릎에 앉아 모자를 위로 들더니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치 얼굴 좀 보자 하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고 있던 찰나에 원숭이가 프레임에 들어와 그 장면이 찍혀버렸다. 순식간에 아기 원숭이와 가까이서 아이컨텍을 하게 된 둘째는 겁에 질려 얼음!이 되었는데 아기 원숭이는 아이 무릎에 쉬야까지 하고 유유자적 어미에게 가버렸다.
동물이지만 아기는 아기를 알아보는 걸까? 아기 원숭이들은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덩치 큰 아빠 원숭이들은 관람객의 가방을 뒤지거나 휴대폰에 관심을 가진다. 내 가방엔 비닐봉지는 없지만 아이들 손 닦아주려고 물티슈가 있었고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 원숭이가 다가와 물티슈 있는 부분을 건드리며 가방을 열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최근에는 지능이 높은 원숭이들이 사람의 휴대폰을 빼앗아서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일도 잦아져서 사진찍기를 금지시킬 때도 있다고 한다.
길게 잡아도 2시간이면 다 둘러보는 몽키 포레스트. 초록초록한 숲에서 동물과 교감하며 산책을 하다보니 정신도 맑아지고 힐링이 되었다. 둘째에게는 내 바지에 원숭이가 오줌쌌다고 원망을 들었지만 말이다. 몽키 포레스트에 오면 새끼 원숭이도 조심하세요. 작고 귀여워서 넋놓고 보다가 순식간에 당합니다. 천방지축 겁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우리의 우붓 숙소에도 방 문을 열고 나오면 호텔 스텝들이 원숭이를 위한 음식을 준비해놓고 원숭이들이 어디선가 건너와 음식을 이렇게 먹고 있다. 친정엄마는 원숭이가 무섭다며 몽키 포레스트에 들어오지 않고 매표소 앞의 카페에서 기다렸다. 발리에서는 몽키 포레스트에서만 원숭이를 볼 수 있는게 아니라 원숭이와 함께하는 게 일상인 삶이다. 발리 열흘살기 여행의 시작이 우붓이라서 발리의 매력에 더 빠져든 것 같다. 이후에 누사두아, 꾸따, 스미냑에 가봤지만 우붓을 뛰어넘진 못했다. 몽키 포레스트가 있는 우붓의 초록숲이 주는 매력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