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아버지는 멀리까지 학원에 다니던 나를 매번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셨었다.
취업준비를 할 때도 하루는 이른 새벽에 면접장에 가야 했던 나를 내려다 주시고 출근을 하시던 당신이었다. 아직도 그날 새벽에 떠 있던 손톱달이, 버스를 기다리며 떠오르던 빨간 해를 함께 바라보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 면접 본 회사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어렸던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니까, 시간이 늦었으니까.
그랬던 딸이 이제 취업을 하고, 독립을 하더니 집에 찾아가는 일이 점점 줄게 되었다. 대중교통으로 여러 번의 환승을 해야 하는 곳에 계신 부모님은 가끔이더라도 늦은 시간에 힘들게 오는 딸이 걱정되시는지, 혼자 갈 수 있다며 극구 사양하지만 지금도 아버지는 근처 역까지 데리러 나와 주시곤 한다. 이젠 이런 마음이 절대 당연함이 아님을 알기에, 피곤한데도 나오시는 그 발걸음이 너무나 소중하다.
아버지는 은퇴하신 뒤 할 일도 없고 집을 시끌벅적 흔들어놓던 딸들이 모두 독립하고 나니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며 울적해하시던 때가 있었다. 차에 타자마자 입 터진 듯 조잘조잘 떠들어 대는 나를 보며 이래서 날 데리러 나오는 게 당신에게 기쁨이라며 집에 도착해서도 한참 동안이나 대화를 나누는 게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언제든 좋으니 아빠택시 타세요. 택시비로 용돈 하게!” 라며 장난처럼 말씀하셨지만 그 안에는 나를 돌보고 싶은 당신의 마음이 들어 있음을 이제는 안다. 원래 부탁을 잘 못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 당신 힘드실까 봐 내가 고생하고 말지 ‘ 했다가도 못 이기는 척 픽업을 부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당연하다고 착각했던 당신의 마음은 사랑하니까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전용 택시기사님으로, 때론 고민 상담사로 임명해드렸다.
다른 관계에서도 그랬다. 천안은 코 앞이라면서 퇴근하고 한 시간을 달려서 날 보러 왔던 사람도, 한참을 놀고 다시 한 시간 달려서 새벽에 돌아가던 사람도, 내가 부담을 가질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 나는 안다. 그 고마움에, 받기만 하는 미안함에 나도 당신을 찾아가고 싶어 운전면허를 따기도 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꽤나 수고스러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을 때, 오히려 해줄 수 있음에 기뻐한다면 사랑이 아닐까?
누군가를 위하는 일련의 행위들에 당연함은 없다. 당연하다고 착각한 마음만 있을 뿐. 인간관계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관계에 분열이 시작된다.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이만큼 해야 한다는 것은 강요이며, 네가 날 좋아하면 이만큼 하는 건 당연하다는 건 오만이다.
강요도 오만도 없는 기울어짐 없는 건강한 관계 속에서 부디 올해는 좀 더 행복하길 바라본다.
절대 당연하지 않은 내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그 마음들을 어여삐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