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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맞다 강선생 Oct 30. 2023

면접 대기실은 사랑방

이상한 대화가 오가는 이상한 곳

"선생님, 무슨 과목이세요?"


이번엔 누군가 먼저 물어봐 주었다.

 다른 곳에서 내가 많이 했던 질문이고,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오고 갈 질문이다. 눈이 펑펑 오고 칼바람이 부는 12월, 1월 혹한의 날씨. 한 명씩 손을 호호 불며 대기실로 들어오면, 누군가 꼭 던지는 질문이다.

 학교의 기간제 교사를 뽑는 면접 대기실에는 종종 특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질문 몇 개 주고 받고는 손뼉을 치고 반가워하며, 익숙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어디서 근무했는지, 처음 지원인지, 몇 군데 면접을 다녀왔는지 그리고 이 학교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는지.


 다른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동료 선생님들의 이전 동료 선생님을 만나기도 하며 접점을 찾는다. "선생님, 미션(스쿨) 근무해 보셨어요?", "어머어머!!저 거기 계신 그 부장님 알아요!!덕분에 도 닦고 나왔잖아요~", "거기는 기간제 꼭 담임 주는 학교예요.", "저는 미리 법명도 받고, 세례명도 받고, 목사님 추천서도 받아놨어요. 하하하하!!", "일을 너무 몰아주셔서 펑펑 울면서 다녔어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면접 꿀팁을 공유한다. 내 일인양 안타까워 했다가, 깔깔대고 손뼉치며 웃기도 하다가를 몇 차례 반복하다보면 이름이 불리운다. 영락없이 다소곳하지만 긴장 풀린 밝은 표정으로 면접실로 따라간다. 대기실에서 함게 시간을 보낸 이들이 아니었다면 바짝 얼은 몸과 마음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신세였을텐데 말이다. 분명 우리는 모두 경쟁자인데, 내가 붙으면 네가 떨어지고, 그가 붙으면 그녀는 불합격일텐데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다. 정보를 더 나누지 못해 안달하고, 잘 보고 나오라며 친정 엄마에게서도 못 들은 파이팅을 외쳐주고, 망치고 왔다 싶으면 진심의 위로를 전한다. 대기실은 정말 이상한 곳이고, 이곳의 사람들도 모두 이상하다.


 면접실에 들어갓던 선생님이 나오면, 흡사 예방 접종을 먼저 맞은 초등학교 꼬마를 둘러싸고 퍼부어지는 질문 세례처럼 많고 많은 질문이 오간다. "몇 사람이 앉아 계세요?", "전공 질문 있었어요? 입시 질문은? 생활 지도 관련도 물어보시나요?". 어떤 사람이 대답해줄까 싶지만, 그 어려운 일을 또 이들은 해낸다. 면접관들의 인상착의와 받앗던 질문들, 주의사항, 그리고 이어지는 개인적 의견과 꿀팁들. 그리고는 "여기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또 만나요!", "고생하셨어요, 감사해요 선생님!!"의 든든하고 따뜻한 인사를 하고는 손 흔들며 헤어진다. 이 사람들을 어느 누가 4,5시간 전에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12월부터 시작되는 채용시즌은 마음이 더 시린 시기기에 서로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자들이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잠시 스쳐 지나갈 인연들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 언젠가 다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일어나는 풍경이기도 하다.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고, 같은 바람을 갖고 있으며,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이렇게나 가득이라니'라는 생각만으로도 바라보는 눈빛이 짠해지고 너그러워지며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진다. 아줌마의 오지랖이기도 하리라. 우리의 이러한 처지를 우리만 아련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어느 학교의 교무부장님과 채용 담당 선생님들께서는 본인들의 기간제 시절 "썰"을 재미있게 쏟아 놓으시며 긴장을 풀어주시기도 하셨다. 들어가서 불경을 외웠던 이야기부터 수업 시연을 하며 일인 다역을 코믹하게 연기했던 이야기, 지원자들끼리 저녁 먹으며 거나하게 취했는데 '적격자 없음'으로 모두가 똑, 똑 떨어졌던 이야기...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반나절까지 함게 대기하며 긴장도 하고, 공감도 했다가 결과를 알지 못한 채 헤어지는 그 모든 예비 선생님들이 어디선가 모두 잘 되었으면 좋겠다. 공부를 접어야 하는 각자의 사정을 뒤로 하고, '임시직'이라는 이름표라도 간절하게 달기 위해 나온 절실한 선생님들. 면접용 옷과 구두를 한겨울에 싸짊어지고 다니며 환복하는 청춘들, 아이를 맡기고 나온 나와 같은 주부들,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는 가장들.

 학생들이 보고 싶고, 간절히 교단에 서고 싶어 나온 (임시지만) 교사들. 그 간절한 마음이 어느 곳엔가 가 닿고, 이루어지고, 학생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전우들을 한 해 또 만들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런 사람들 덕분에 여태껏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가이드와 격려 덕에. 가장 추운날 불어왔던 훈풍들 덕에, 그만두지 않고, 지쳐도 다시 힘내서 이 시기를 뚫고 올 수 있었다. 힘든 시기에 함께 했던, 스쳐지나가지만 선했던 인연들을 기억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했길, 앞으로도 그래줄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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