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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맞다 강선생 Dec 09. 2023

많은 일감은 나를 키우는 것일까.

소띠에 황소자리라 소처럼 일하는 것일까. 

 지난달부터 덜컥 담임을 맡게 되었다. 담임 라이프를 즐기는 나에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기존의 업무를 모두 안고 간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일은 남부럽지 않게 많았다. 수업도 우리 학교 60명의 선생님 중 가장 많았고.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둘째가 돌 될 무렵에 어렵사리 들어갔던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1,2, 3학년의 모든 수업을 걸쳐서 맡겨주셨고, 담임과 함께 전교 선생님들의 시간표 조정하는 수업계 업무도 주셨다. 당연히 동아리도 맡았고, 교과 주임도 맡았다. 당시의 나는 4년간의 자체 육아휴직에서 막 복귀했던 터라 '사회가 나를 아직도 쓸모 있어하다니..' 따위의 감격에 젖어, 떠 안겨주는 모든 일을 그야말로 '감사하게' 감당했다. 허덕대며 하루살이로 수업을 준비했고, 눈에 밟히는 돌쟁이 둘째와 4살 첫째를 원에서 찾기 위해 일감을 싸들고 집으로 뛰다 결국 이석증을 얻고야 말았다. 


이미지출처 : 네이버 웹툰 @독립일기 (by 자까)

 기간제 교사들끼리 모이면 '누가 누가 일이 많았나' 배틀이 붙곤 한다. '어느 학교가 더 나빴나'는 부록처럼 따라오는 후속 배틀이다. 길어먹던 우물에 침 뱉는 거 아니라지만, 간절히 채용되기를 바랐던 마음이 무색하게, 그 마음을 악용하여 이것저것 얹어주는 학교는 불행히도 아직 너무 많다. 연차가 쌓이면 호기롭게 거절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아직도 연차가 덜 쌓인 것인지 상궁 근성이 내 DNA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넘겨주는 일을 넙죽넙죽 웃는 낯으로 잘도 받아 껴안는다. 


"여보, 나 이제 기안 짱 잘 써. 3월부터 지금까지 80개가 넘게 썼어. 여왕 오브 기안이야ㅋㅋㅋㅋ그리고 나 품의도 7000만 원쯤 올린 거 같아. 행정실이랑 손발도 잘 맞아! 교육청에 전화도 잘해-장학사님들이랑 주무관님들 업무 체계나 문의 방법도 많이 알아갔어. 올해는 정말 업그레이드의 해야"


라고 말하고 저녁 식탁을 치우다 문득 울컥한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정신승리일까, 아니면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게 나에게 좋은 것일까. 과한 업무는 나를 성장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갉아먹는 것일까. 다음번에도 나는 얹어지는 업무들을 '나를 성장시켜 줄 도구들'로 감사히 받아야 할까, 용기 내서 거절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투덜거리는 푸념으로 들릴 것을 안다. 대문자 T인 사람들은 징징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일이 많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을 나도 더러는 '직장에서 칭얼대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죄송합니다.) 적정선이란 어디까지인가 고민하게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내 생활을 지킬 수 있는 선. 그것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소띠로 태어나 황소자리까지 된 나는 정말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열심히 일 할 운명이자 팔자인 것일 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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