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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맞다 강선생 Dec 20. 2023

내년을 약속해주지 못해 미안해

교감선생님의 콜을 기다리며

"선생님, 동아리 좀 맡아 주세요!"

"선생님, 내년에 몇 학년 담임 하세요?"

"선생님, 내년에 세계사 해주시면 안 돼요?"


 내년을 계획하는 요맘때가 되면 참새처럼 뒤를 따라다니며 아이들이 묻는 질문들이다. 

 "내년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나는 시키는 거 해야 해~"

연차가 짧을 때에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얼버무리며 아이들을 보냈지만, 이제는 적당히 둘러대며 아이들 등을 교실로 떠밀 줄 알게 되었다.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는 이럴 때 쓰는 단어겠지. 동아리 커리큘럼을 물으며 아이들과 타협을 하고 구성원을 물으며 밀당하시는 선생님들과 나의 답이 다름을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며 슬그머니 교무실로 사라진다. 

 내년에는 학생이 증원되어 32명씩 한 학급에 배정될 예정이며 학급수도 10 학급으로 늘어나게 되었다는 소식이 교내 메신저로 돌고, 곳곳이 술렁이며 자연스레 담임 희망 여부를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어떤 선생님은 지역만기가 되었다는 얘기를 하시고(교사는 max 10년까지 한 지역에 근무할 수 있다.), 어떤 선생님은 학교 만기가 되어(4-5년) 전보를 가야 하고, 어떤 선생님은 내년에 복직을 하신다, 휴직 연장을 하신다 등등의 계획이 오가는 12월. 

버스킹을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내년'

나의 내년이지만 내가 계획할 수 없는 시간이다. 


 사립학교는 빠르면 11월, 그리고 공립학교는 학바학(학교 바이 학교)지만 12월 중순~하순 언저리부터 교감 선생님이 기간제 교사를 호출한다. 내년의 계약 여부를 통보하기 위해서이다. 면접 볼 때만큼이나 쿵쾅거리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감선생님 앞에 섰다가 돌아오는 발걸음은 시시때때로 달랐다. 더 있어달라는 얘기를 들은 날이면 나도 모르게 날아갈 듯 빠른 발걸음으로 춤추듯이 돌아왔고, 발령 희망하는 교사가 있어 미안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나 복직교사가 있어 아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괜히 화장실로 가곤 했다. 

 

'자리는 어디든지 있고, 나는 프리랜서이니 바람 따라 물 따라 필요로 해주시는 곳에서 재미있게 일하자' 마인드를 지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일 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고, 수학여행을 함께 다녀오고 체육대회와 축제를 준비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인사하던 아이들과 헤어짐을 준비한다는 건, 세월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사춘기를 겪으며 서로 볼꼴, 못볼꼴 모두 보며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버린 아이들. 피곤하고 아픈 날은 서로를 깨우고 마이쮸로 격려해 주던 아이들을 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자'는 마인드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훌륭한 마인드의 선배/동료 교사들과 헤어짐의 아쉬움도 덤덤한 마음을 지키기에 어택이 된다. (다른 직장인들도 그렇겠지만 이건 높은 비율은 아니다.;;;)

사진출처: 일요일일요일밤에 이휘재의 인생극장 (반갑다면 옛날사람ㅎㅎㅎ)

 매년 아쉬운 마음을 애써 접고 마음을 다잡는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기꺼이 채웠고, 주어진 시간 동안 행복하게 지냈다. 이게 내가 택한 길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임을 담담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자. 또 내년엔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보자" 흔들리고 흔들려도 중심을 지키자 다짐한다.


 안녕 얘들아, 내년을 약속해주지 못해 미안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자. 그리고 건강히 또 만나자.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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