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자아 성찰기
부모님이 환갑을 맞이하실 때쯤이면 난, 꽤 안정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잘 나가는 직장인에, 출근도 하고 싶을 때 하고 주말은 당연히 쉬며, 포근하고 깔끔한 집에서 우아하게 살 줄 알았다. 고생하신 아빠의 차를 턱턱 바꿔드리고, 엄마의 모피코트를 척척 사드리며 지갑을 보지 않는 여유로운 딸. 내가 초등학, 아니 국민학생 때 그리던 나의 마흔 즈음의 모습이었다. 맞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였다.
'이립(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의 서른을 지나 '불혹(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마흐니가 되었다. 아니, 서른에 마음이 확고하여 움직이지 않고 마흔에 판단이 흐리지 않는다면 쉰에는 승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50의 나이는 '지천명(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이라 했다. 옛 어른들의 스케일은 참 무섭다.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단단히 세워도 세워야 할 마흐니의 나이에, 나는 오늘도 갈대처럼 흔들리며 온라인 교육청을 떠돈다. 12월부터 하나둘씩 나오는 사립학교의 알짜 구직 시즌은 쓸개를 떼 버리는 바람에 많이 놓쳐버렸다. 이제나 저제나 남은 학교들이 나올까 오늘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흔들린다. A학교가 나오면 홈페이지를 훑어보며 그곳에 맞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처럼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B학교가 나오면 또 본투비 B학교의 교사인듯한 자기소개서를 뚝딱(사실은 뚜우우욱따아아아악) 만들어낸다. 정말 줏대가 없어도 너무 없는 마흐니다.
비슷한 듯 하지만 학교마다 요구하는 자기소개서의 양식은 조금씩 다르다. 특히나 종교가 있는 학교라면 더더군다나 그렇다.
1. 학생의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필요한 교사의 역량은 무엇인지 성장배경을 바탕으로 기술하시오.(1,500자 이내, 11 point)
2. 수업방법 혁신을 위해 자신이 시도했던(또는 시도하고 싶은) 방법이 있다면 수업 시간에 적용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소개하고 그 이유와 기대효과를 기술하시오.(800자 이내, 11 point)
3. 자신의 취미나 특기를 고려하여 임용 후 학생들의 특기적성이나 동아리 활동 지도에 자신이 있는 영역을 기술하시오.(800자 이내, 11 point)
4. 대학생활(또는 교직생활)중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한 사례를 들고, 그 경험이 자신의 교직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기술하시오.(1,500자 이내, 11 point)
1. 본인의 성장 과정 및 가치관에 대하여 서술하시오.
2. 교사로서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교육철학 및 교육관에 관하여 서술하시오.
3. 경력사항 및 특기사항에 관하여 서술하시오.(봉사활동 내역 반드시 포함할 것)
4. 임용 후 교과 및 생활지도를 포함한 학생 지도 계획에 대해 서술하시오.
쓸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본다. 내가 어떻게 커 왔더라,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었더라, 나는 아이들과 어떤 수업을 만들어 왔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재미있었지? 아이들은 어땠더라? 어떤 업무를 했더라? 또 봉사하며 살았던가? 나.. 잘.. 살아왔나..??
성장 배경에서부터 교육관과 이력까지 매번 돌아보며 점검하게 된다. '자소설'이라는 말처럼,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싶은 유혹도 들지만 이립을 지나 불혹에 들어온 마흐니니까 간신히 정신을 다잡으며 참아본다.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니까. 아이를 하나, 둘 키우면서 나의 자기소개서도 함께 성장해 간다.
어쩌면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겨울의 나는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밀어도 밀어도 다시 굴러 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같은 상황에 놓이고 같은 질문을 받더라도, 나의 대답과 삶은 조금씩 달라지리라 믿는다. 연륜이라 부르기 아직은 부끄러운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를 다듬고, 다듬기를. 나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보고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 창피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또 열심히 기웃거리며 유연하게 흔들려 봐야겠다.
제목바탕사진출처 : unsplash @amy-humphries-R_a3-W5ODvA-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