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맞다 강선생 Nov 04. 2023

의욕과 후회의 대환장 파티

부담과 욕심의 무한 널뛰기

 외가에 갈 때마다 엄마는 내 일기를 챙기셨다. 글보다 그림을 그리는 칸이 컸던 시절부터 깍두기공책을 넘어 17줄 줄노트가 될 때까지도. 외가의 대식구는 일기를 함께 읽으며 깔깔깔 웃으셨고, 한 바가지 칭찬과 함께 섭섭지 않은 용돈을 주셨다. 지금이라면 인권침해라며 어린이들의 야무진 반응이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고 기뻐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독자를 의식하며 글을 쓰던 꼬맹이는, 글 쓰는 것이 부담스러운 어른으로 자랐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짧디 짧은 피드를 올릴 때도 한 마디 한 마디를 썼다 지웠다를 골백번 괴로워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용기 있게 시작한 브런치. 


 머릿속에 날뛰는 글감들을 부여잡아 정리하고, MSG 치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교훈과 감동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정신을 부여잡는다. 타고난 작가님들처럼 쓰고 계신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글은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온 기름 먹은 이면지인 것만 같다. '내가 이걸 또 왜 시작해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애들 들여다보기도 바쁜데 놓아둔 살림이나 더 신경 쓸걸..'쓰나미처럼 몰아치는 후회 사이를 비집고,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겠어서 글을 발행한다. 찌끄래기 같은 내 글을 보며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다가, 너그러운 분들의 라이킷과 댓글들에 심폐소생되어 또 슬그머니 야심에 불을 지폈다가, '내가 이거 왜 또 시작해서..'로 반복되는 의욕과 후회의 대환장 파티. 무한 굴레의 그 어딘가를 매일 걷는 중이다. 

사진출처 : 김혜수 '모던보이 올인영상'중에서

그래도 그만두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나에게 생긴 변화 몇 가지가 있다.


#1. 눈 뜨자마자 브런치 어플을 누르고 라이킷과 댓글을 확인한다.

 지난달 까지는, 한쪽만 떠진 눈으로 토스 비밀번호를 몇 번이나 틀려가며 들어가, '쌓인 이자 지금 받기'와 '오늘의 행운복권 10원 받기'를 누르던 나인데 말이다. 어느 천사가 다녀가셨나, 어떤 댓글을 달아주셨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울어진 필기체 'b'를 누르는 설렘이 꽤 좋다. 


#2. 글감 어디 없나 추억이 된 기억들을 탈곡하고 있다. 

옛 제자들을 기억 속에서 소환하고 에피소드를 쥐어짜며, 그때 그래서 어떻게 됐더라, 걔가 뭐라고 했더라 동료 선생님들께 안부 인사를 가장한 연락도 돌린다. 옥장판 안 팔고 돈 안 빌리고 옛이야기만 했으니 꽤 괜찮은 인사 아닌가 하며. 덕분에 옛날 이야기하며 추억에 잠기다가도 글감이 안될 것 같으면 다른 거 뭐 없나 더 내놓으라고 생떼도 부린다. 


#3. 개그 욕심이 부쩍 많아졌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졸까 봐 개그 준비하고 웃긴 라디오 사연 외우던 사람이 나다. 본투비 진지인 사람이 웃기고 싶어서 주접과 오버를 시전 하니, 남편은 안쓰러우니 적당히 하라고 했다. 나는 글러먹었나 보다 그냥 다정과 진지로 가자 마음을 먹었다가도 재미있는 작가님들이 글을 보면 야망이 살아나 어설픈 개그를 날리는 패턴에 갇혀버렸다. 개그는 과연 느는 것일까.


#4. 그리고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추천 도서를 읽다 보니,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라.', '글의 주제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하라'는 메세지가 반복되었다. 내가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무엇일까. 나는 왜 글을 쓰는 것일까. 나에겐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일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 시간이 늘게 되었다. 


 

 돌아오는 한 주도, '내가 미쳤지, 글쓰기를 또 시작해서 머리를 뜯고 있나'와 '참 감사한 댓글이다 용기 내서 계속 써야지'를 정신 나간 여자처럼 반복하며 살 것 같다. 널을 뛰는 기복이지만, 글쓰기의 부담감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로 다짐하고 꾸역꾸역 한글창을 열고 있는 나의 변화가 꽤 괜찮아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