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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토리아 Nov 10. 2024

<퍼펙트 데이즈> 새벽의 빗질

일본 교육의 힘

  정말 가장 힘든 일상의 하나였다. 6시 이전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30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른 어떤 일상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이 바로 새벽에 잠을 깨 일어나는 것이었다.

보통 6시 이전에 일어나 식사준비하고 꽤 먼 거리의 직장까지 출근하는 일은 그만둘 때까지 쉽지 않았다.

그 오랜 기간 동안의 새벽기상이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는지... 나는 한참 후에야 알았다.

나는 저혈압 증상이 있는 사람이다. 굳이 저혈압이란 병명을 달고 산 것은 아니지만 체질적으로 강건하지 못해 늘 피곤함을 달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 힘든 과정을 잘 견뎌내고 지금과 같은 느긋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에 스스로를 칭찬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머리가 개운치 않고 어지럼 증상이 있었고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너무너무 힘들다고 느꼈지만 늘 그렇듯 별일 없는 듯 하루를 시작하고 그 많은 가사를 다 해냈다. 


'내가 좀 더 건강한 사람이었으면 이 일이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라는 반성도 하면서


<퍼펙트 데이즈>  영화관을 찾아가 관람한 일본 독립영화.  19일 만에 촬영을 끝낸 영화라고 한다.

나는 영화 속의 몇 장면이 인상 깊었다. 주인공이 새벽에 일어날 때, 그를 깨우는 소리가 있다. 깜깜한 새벽에 골목을 빗질하는 소리다. 

늘 같은 시간에 골목을 깨끗하게 빗자루로 쓸고 있는 고령자. 

그 빗질에 대한 수고비를 기대하지 않고 늘 자신만의 새벽을 청소로 시작하는 고령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누군가의 알람이 된 빗질하는 소리, 쓱쓱쓱.


  나의 모친은 지방 소도시의 단독주택에서 50년 이상 사셨고 당신 명의로 된 그 기와집을 정성 들여 가꾸셨고 평생을 그 집에서 보내셨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 잊어버린 모친의 빗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동네에서 가장 깨끗하게 집 앞을 청소하고 빗질하는 집은 우리 집뿐이었다.  그래서 울 모친은 동네분들에게서

  " 아이고 어째 그리 골목을 매일매일 그래 깨끗하게 청소를 해요? 내 집안도 아닌데 부지런도 하시네" 

하는 칭찬을 그리 달가워하진 않으신 것 같았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은 왜 이웃들은 하지 않는지 혀를 차셨다. 나의 외할머니도 일본에서 10년은 사셨고 나의 모친도 어린 시절 일본교육을 받으신 분이시다.


일본은 근대화교육을 19세기말부터 시작했고 특히 여성은 가정에 충실하고 자녀양육에 최선을 다하는 교육목표하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 시절 일본에서 교육받은 분들은 좀 비슷한 성향의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여성의 한계를 가정이란 곳으로 한정 짓고는 있지만 늘 정갈하게 가정을 가꾸고 주위를 청결하게 하는 습관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70년대 한동안 새마을운동으로 주말 아침이면 빗자루를 들고 동사무소에 모여 다 같이 청소를 했던 기억도 있다. 청소를 한 후엔 동네 전체가 잠깐 동안 깨끗해 늘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여전히 집 앞 골목을 청소하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나 거리 등등 모든 곳은 미화원이 하거나 용역업체가 하고 있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저이들이 청소를 하고 돈을 받는 거라는 의식이 있어 그런지 거리에 뭔가를 버리는 시민은 있어도 줍는 시민은 정말 보기가 어려운 요즘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집 앞 골목길을 새벽에 빗질하는 이처럼 다른 날은 아닐지라도 겨울날 눈이 와 아파트 보도에 눈이 쌓인다면 얼른 빗자루를 들고 그 길을 쓸기라도 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이른 새벽 공원의 낙엽을 쓰는 분들도 고령의 근로요원 분들이 시라 이제 익숙한 빗질소리에 "수고하십니다" 간단한 목례만 하고 지날 뿐이다.

언젠가 나도 영화 속 빗질하는 이처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심정으로 꾸준히 몸을 움직여 정갈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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