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 마담의 일상

넷플릭스를 보다 < 베이비 피버>

by 빅토리아

넷플릭스는 정말 쉴 새 없이 나를 잡아당긴다.

유럽 나라들의 영화와 드라마는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보이는 남녀에 대한 인식 차이를 다르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60대다.

오랫동안 남존여비와 가부장적 가정에서 살아왔고 그다지 반항 없이 어떻게 하면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를 저 틀속에서 잘 살아내야 하나 고민하며 노력해 왔다.

나는 늘 그렇게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 나이까지 왔는데 변화한 건 나 혼자만이었다. 기득권자인 남자는 여전히 기득권을 행사하며 시대적 변화를 거부하며 점점 퇴행적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력이다.

주위 친구들의 부부들이 거의 비슷한 상황 속에서 분노를 느끼거나 분노를 느끼지 못하거나 설사 분노를 느끼더라도 대책이 없는 싸움이라 생각하고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내고 있다.

30대들의 상황은 많이 반전되어 오히려 여성 상위시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염려를 하는 시어머니인 친구들도 있다.

오늘은 덴마크 미니시리즈 <베이비 피버>를 시청했다.

인공수정 전문의 여의사를 중심으로 여러 부부의 인공수정 사레를 보여주고 주인공의 임신과 사랑과 출산에 대한 내용으로 전개된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인공수정으로 임신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역시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사회적 성취의 욕구가 강한 여성들이 많아 결혼을 이루거나 출산을 미루어 노산인 경우가 많고 임신 자체가 안돼 인공수정으로 하는 사례들이 들고 있다 한다.

나는 내 딸도 걱정이다. 35세, 미혼이라. 하지만 나의 염려는 염려로 끝날뿐. 나의 인생이 아니다.

엄마로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육아와 자녀 성장을 지켜보며 다사다난한 많은 시간들이 나에겐 참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 아이들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종족번식을 했으면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고 보면 나의 평범한 삶이 최선이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나는 나의 경험으로만 판단하고 사고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그리 길지가 않더라. 60대를 맞이하면서 든 인생의 길이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모든 생물은 그들만의 흥망성쇠가 있다. 다만 시기적으로 어느 때가 먼저 오는지 어느 때가 가장 늦게 오는지 다 같진 않다는 거.

나는 일찍 결혼하여 일찍 출산하고 나이 들어 내 삶이 보통 이상은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일 뿐. 딸은 그냥 자연임신으로 출산의 경험을 했으면 하는데...........바램일 뿐이다.


2. 유럽 드라마의 소재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성소수자

부쩍 많이 성소수자의 삶을 드라마의 소재로 보여주고 있다. 어느 드라마든 한 번도 이들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는 본 적이 없다. 그쪽 사회에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들이 포용되어 인정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그들 커플의 관계에서 누가 여자의 역할을, 누가 남자의 역할을 하는지? 혹은 꼭 성별의 역할을 분담하는 건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연인들의 사랑감정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으로 이해는 된다. 사람의 감정의 흐름을 제대로 찾아가며 진정한 감정의 합일을 이루는 그들을 보면서 그 사회에서 이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가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하리수, 홍석천의 커밍아웃이 나온 지 20년이 지났다. 아 벌써 20년이 지났다니...

이렇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데 우리나라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참 안쓰러울 정도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섹스만의 역겨움을 생각한다. 나는 역겹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그 괘감을 누리는지가 더 궁금할 따름이다.

성 다수자들이 누리는 성적 쾌감을 성소수자들이 누려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도구적인 문제가 있을 뿐이다. 나사와 볼트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사랑하는 이들이 누리는 둘 만의 합일된 쾌락은 인간이면 누릴 자격이 있지 않을까?

다만 기구를 사용하여 쾌감을 추구하는 성 다수자들의 행위만 정당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의 행위는 절대적으로 악이란 발상은 너무 편협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만 하면 좋겠지만 연인을 구하지 못한 소수자들이 그냥 무감각적인 삶을 살아가라고는 억제할 수 없는 거 아닐까?

다수자들의 소수자에 대한 횡포는 점점 줄어들 거란 생각이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오래된 가부장적 관습으로 인해 다양한 관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변화에 대한 절대적인 거부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걸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