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는 집에서도 시킨다?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여교사

by 빅토리아

2023년 1월 어느 날

지인을 만났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도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여교사는 집에서도 학생들 부리듯 시켜 먹는다면서요?"


이런 투의 여교사 비하하는 이야기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에도 들은 말이다.

내 나이 60살이 넘었다. 저 얘기는 내가 10대에도 들었고 20대에도 들었고 지금도 듣는 중이다.

나는 이 사실에 대해 약간의 어이없음과 올라오는 분노와 약간의 변명을 위해 합리적인 추론을 하며 이 글을 적는다.

우리나라 70년대 여교사로 근무했던 분들은 대략 30대의 여성일 거라 생각하자.

그녀들 해방 전후에 태어났고 고등교육을 받은 시기는 50년대에서 60년대 초반이다. 이 시대의 우리나라 경제와 교육상황과 사회분위기를 알아보자.

625 전쟁과 경제적 빈곤으로 여성의 고등교육은 쉽지 않았다. 나의 모친은 여고를 졸업한 그 시대의 신여성이라 들을 얘기들이 있다. 모친은 당신이 살고 있던 경남의 한 시골면에서 여고를 다닌 여자는 둘 뿐이라 했다. 당시 상당히 잘 사는 지주집안의 딸들이었다고 한다. 여고를 졸업하지 않으면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었을 터. 그럼 여교사들은 집안도 어느 정도 부유하고 교육열이 있는 집안의 딸이었을 것이다. 보통의 여성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학벌과 집안이라 시샘을 받았을 가능성은 너무 많았을 것이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어떠했을까?

지금도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50년 전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직업을 가지는 것 자체도 그리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시대였으며 그나마 인정받았던 직업이 교사였다. 지금도 여교사가 배우자 순위 1위 직업이지 않는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여선생님은 많지 않았는데 한 학년에 7반 중 2명 정도? 기억은 확실치 않다. 70년대 중. 고 때도 비슷했나? 아니 더 적었던 것 같다.

자 그럼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보자

70년대의 상황.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고 경부고속도로가 열리던 시기. 민주화 바람도 잔잔히 불던 시기.

그러나 각각의 가정에 들어가 보면 엄마의 지위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었는가?

거의 전업주부였고 남편은 가정의 왕으로 군림하던 시기였다.

칠거지악. 현재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여성들은 있을까?

오랫동안 내가 되고 싶었던 여성상은 현모양처였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나는 교육되었다.

당시 여교사는 당연히 맞벌이 부부였을 테고 직장맘이었다. 직장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그녀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지금과 비교하면.......인건비가 저렴했기 때문에 육아를 위한 도우미의 도움을 지금보다 쉽게 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 식모라는 이름의 도우미를 있었다는 걸 안다. 시골에서 어린 소녀가 오기도 했고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일하기도 했다. 모친은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꽤 편하게 주부의 역할을 하셨다.

당시 여교사는 흔하지 않은 맞벌이 가정이었고 전업주부들이 시샘을 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여성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배움으로 약간의 남녀평등의식도 있지 않았을까? 그럼 집에서도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집안일에 대한 분배차원에서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당시 대부분 집안일은 엄마들 몫이었고 딸의 몫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불공평한 일이었나?

이런 관습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딱히 변하지 않은 듯. 아니 많이 변했다고들 한다. 아들들이 변했고 며느리들이 변했지만 내 나이 또래 또는 이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억지를 쓴다. 여자의 시샘은 당시의 인텔리인 여교사들을 깎아내리고 자신의 노동에 가치를 더하기 위해 흠을 잡아낸 것이다.

맞벌이 가정의 여교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집안일에 대한 분배요구를 학생 부리듯 시킨다고 흉을 잡는다.

여교사의 남편은 결혼초부터 주위로부터 듣는 말이다.


" 초반에 잡아야 해. 안 그러면 평생 와이프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아야 되니 처음부터 절대 하면 안 돼"


이 말을 결혼 내내 신줏단지처럼 받들고 살아가는 남편들이 아주 많다. 정말 많다.

여교사조차 저 말을 듣기 싫어 남편에게 아무것도 시키지도 못하고 너무 힘들게 혼자 집안 일과 직장일을 평행한다. 내 주위에 많은 여교사들이 저렇게 살았다. 집안일시키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론을 신봉하면서.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조금은 변하고 있는 남녀평등(나는 남녀차이론이라 말하고 싶다) 덕분에 시어머니들이 아들을 아주 불쌍히 여기고 있다.

21세기에 왜 지금도 여교사에 대한 편견이 저렇게 존재하는가? 나도 교직시절 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학생들을 부리지 않고 가족들에게도 뭔가를 부탁할 때 심적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그 많은 집안일을 혼자서 다 했다. 남편은 단 한 번 설거지를 한 적이 없다. 청소기 한 번 돌린 적 없다.

당연히 집안일을 조금은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키면 절대 안 한다는 신조를 끝까지 지키고 있다. 스스로는 당연히 안 한다. 집안일을 하면 학생처럼 부림을 당한다는 피해의식은 부부관계를 망가지게 했다.

이건 나의 경우다.

아직도 여교사라고 하면 시켜 먹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지만 어릴 적 들은 저 흉은 아직도 살아 돌아다니고 있다.

다만 젊을 때 들었던 저 말은 내 또래의 사람들만 하는 말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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