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 그 엄마는 왜?

남편에게 인정받으려고?

by 빅토리아

그리 오래된 영화는 아니다. 잠시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리 흥행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로맨스 영화도 아니고 딱히 장르를 전해 추천한다는 평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전적으로 내가 접하는 매스컴에서 듣고 보고 하는 것이라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세 자매의 어린 시절의 아픔에 대한 내용이란 걸 알기 때문에 어렴풋이 '가정폭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은 들었다.

넷플릭스 덕분에 시력은 나빠지고 눈이 자꾸 피곤해지기는 하나 아주 오래전부터(10대부터 라고 말해도 될 듯) 좋아하는 영화를 아주 마음껏, 그것도 시간, 장소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세상이 얼마나 변화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우와~~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넷플릭스에서 이런저런 영화를 무진장 보고 있었다. 코시국에서. 코시국 끝난 지금도. 다만 시청시간이 줄기는 했다. 어쨌든 귀가 후 휴식을 하고 싶으면 일단 영화를 틀고 나서 의자에 앉아 졸면서 쉬는 것이다.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귀는 여전히 휴식이 아니고 일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암튼 그러다가 <세 자매>를 발견하고 시청했다.

평범치 않은 세 자매가 등장한다. 아니 극히 평범한 여성들일 수도 있다.

내가 그녀들의 과거나 속사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나 또한 보기에 따라 평범하거나 또는 평범치 않다고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젊은 시절 가정폭력에 강하게 맞서지 못한 그저 그런 엄마였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가정폭력이 얼마나 수시로 일어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의 경험으로 가끔씩 일어나는 일로 여겼다.

하나 힘세다는 이유만으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정경제를 책임진다는 이유만으로, 지랄 같은 동물적 폭력성만으로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이 나이 들어서야 알았다.


세 자매와 한 명의 아들을 둔 아빠. 친딸 2명과 외도로 낳은 딸과 아들 합해 4명.

외도로 낳은 2명의 자식을 키우는 영화 속 엄마도 결코 편한 마음으로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식들을 아내 보는 앞에서 아주 거칠게 폭력을 하면서 자신의 미안함을 아내에게 보이는 남편은 칠순잔치 때 잠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미 4명의 자식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깊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트라우마로 인해 평범친 않은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주 아프게.


하지만 난 어릴 적 양육의 영향이 그렇게까지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심적으로 지배되고 있다는 것엔 약간 회의적이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계속 불행 속으로 끌고 가는 모습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엄마. 엄마를 보았다. 영화 속에서 그리 역할이 크지도 않고 화면에도 잘 나오진 않지만 늙은 남편과 사이가 좋은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젊은 시절의 그 엄마는 자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줬을까?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외도로 나은 자식이 매 맞고 벌거벗긴 채 겨울날에 집밖으로 쫓겨난 후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들은 못 낳은 미안함이 남편의 폭력성을 정당화했을까?

하지만 결국 남은 건 자식들이 드러내지 못하고 내재된 자기학대로 인해 피폐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주 다행인 것은 이들 모두 악의적인 심성은 아니라는 것 정도.


나는 반성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 엄마보다 그리 떳떳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날. 나도 남자의 폭력에 무대책이었다. 그냥 말리는 정도가 아니라 멍하니 놀라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왜 저러니? 왜 아들을 때리지? 난 도저히 그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되고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에 대응을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도 많이 성장했다.

그와 같은 폭력은 가정교육이란 이름하에 방치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물론 나는 그걸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름 교육자가 아닌가........그래도 나는 그걸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막아내질 못했다.


나는 얼마 전에야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미처 엄마가 알지 못해 너를 잘 지켜주지 못했다고.

이 나이 되어서야 이걸 알았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여성들은, 엄마들은 남성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결혼을 하고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

남자한테 사랑만 구걸하는, 남자와는 사랑이 우선되는, 사랑이란 단어. 얼마나 하찮은 단어인가?

몇 사람의 인생이 그 어릴 적 받은 폭력에 의해 아주 강한 영향을 받는데 엄마들은 무얼 하고 있었는가.

의식이 깨어나야 한다.

좀 더 폭력성에 대해 알고 대처해야 한다.

내가 맞을지언정 남자의 폭력에 대항하여 아이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남자에게 어떤 식으로의 폭력을 가해 다시는 못하도록 해야 한다. 가능하다.

일찍부터 여자로서만 아니라 엄마로서의 역할에 대해 깨어있어 있어야 한다. 남자의 폭력성에 대해 어린 나이부터, 소녀시절부터 알고 대처하는 방법이 교육되어야 한다. 특히 결혼이란 관계를 남녀, 부부의 사랑으로 묶인 관계라고만 한정 짓지 말고 자녀를 잘 돌봐야 하는 의무감, 여자와 다른 남자의 본능적 폭력성에 대한 깊은 고찰도 있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폭력남성을 교육하는 기관도 필요하다.

난 아직 잘 알지는 못한다. 피해 여성을 위한 피난처는 있으나 폭력남성의 재교육센터는 있을까나?

세상을 점점 여성 아니 아내중심으로 가정은 유지된다고 하는데......... 나이 들어가는 남성은 젊은 때보다 점점 더 본능적(?) 충동성이 커지는 것 같다고 이 나이 60대 들어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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