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전업주부
" 나는 남편 등골에 빨대 꽂고 살았지 뭐....."
이렇게 말한 분은 70세 전후의 김여사이시다. 문화센터에서 같이 외국어 수업을 듣는데 연말이라 송년모임을 하는 점심식사 자리에서 하신 말이다.
가끔씩 만났던 전업주부들은 사회생활을 통해 평생 돈을 한 번도 벌지 못해 봤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낮은 자존감을 드러내곤 했다.
김여사는 부유하게 살아온 것이 몸으로 느껴지는 분이며 지금도 국내는 물론 일본 등지로 골프여행을 다니며 해외여행 또한 안 다닌 곳이 없는 듯해 보였다. 이런 분을 내 입장으로 보면 '참 복 많은 분이구나.....'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몹시 속상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경제가 급속히 발전한 시기는 88년 올림픽 이후이나 그 기초가 되는 산업은 70년 대부터 발판을 다져왔기 때문이다. 그때 중동의 건설붐으로 많은 남성들이 그 힘든 더위를 참아가며 외화획득을 위해 근무를 자처하며 돈을 벌었다. 그 돈은 나라경제는 물론 가정경제에도 많은 보탬을 주었다.
이런저런 시대적 상황은 남성이 바깥에서 돈을 벌고 여성은 집안에서 살림하고 자녀양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역할이었다. 아마 김여사도 별 고민 없이 가정주부로 잘 살아온 분일 것이다.
그러나 흔하게 그 시대 남편들이 전업주부를 가벼이 대할 때 주로 하는 말.
" 당신 밖에 나가서 돈 벌어봤어?"
" 당신이 뭘 할 줄 알아? "
" 당신 집에서 도대체 뭘 해? "
" 당신 누구 덕분에 호강하고 사는 줄 알아?" 등등
이런 말을 줄곧 들어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면 빨대이야기 또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가정주부들이 그런 반응을 나오게 한 책임은 순전히 근대화를 지향하면서 여성의 노동력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로 인해 여성인권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책임은 정치인과 정부에 있다고 본다. 나름 유심히 매스컴을 살펴보면 10년 전까지도 가사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발표해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해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는 없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찾은 기사내용이다
< 통계청 자료에는 2014년 기준으로 가사노동의 시간당 노동가치, 즉 시급을 1만 569원으로 평가>
하루 6시간, 365일로 계산하면 2300만 원으로 계산된다. 얼마나 가소로운 금액인가?
전업주부는 자녀를 키우고 또한 시댁 대소사를 치르고 일하는, 돈 버는 남편을 위한 정신노동까지 얼마나 많은 일은 하고 있었는가?
단지 가정 밖으로 나가 현금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해서 여성 스스로가 저렇게 빨대 운운하고 스스로를 무능력하다고 자진고백한다는 걸 들으면 지금까지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거나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하게 한 우리나라의 행정체계와 가부장적 매스컴의 형태에 분노하게 된다.
24년 현재 종일 육아도우미의 한 달 보수는 300만 원 전후(?)이거나 350만 원이라고 한다. 이 분들은 집안일은 일절 하지 않고 아이 것만 하시다고 했다. 나도 깜짝 놀랄 보수이다. 그래서 저출생 대책이 빨리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80년대 그러니까 40년 전과 그렇게 육아환경이 나아지지 않은 걸 보면 정부나 사회가 얼마나 전업주부뿐만 아니라 직장여성의 노동을 얼마나 가벼이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나도 반성하고 있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나는 정부정책이나 제도개선에 대해 소리를 내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거저 순종하는 걸 미덕으로 살아온 참 어리석은 여자였다.
나는 서울우유를 사지 않는다. 서울우유 광고 때문이다.
https://youtu.be/06Rsx2kdNEw?si=xsVMMm0Mjz_rbpZc
이 광고는 2 년 전의 것이다. 정말 적나라하게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서울우유는 남양유업처럼 오너가 따로 있는 회사가 아니고 협동조합 형식으로 운영되는 회사라고 한다. 저런 광고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질 않고 광고로 사용하는 걸 보면 그 회사의 임원들이 얼마나 고루하고 여성차별적인 사고를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제대로 분노할 수 있다 이제는.
오래된 관습이나 사회적 인식은 현재의 여러 가지 매개체를 통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책적으로 뚜렷한 의지를 가지고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해 제대로 된 가치를 찾아 스스로 전업주부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게 해야 했었다.
나는 물론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전업주부로 살아온 분들의 그 힘들고 지겨운 가사노동과 육아의 고달픔과 며느리로서 견뎌내야 했던 서러움을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는 변했다. 정말 변했다. 그러나 위정자는 여전히 그대로 인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