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작

산야의 일부가 되면

by 영진

“이제 사냥은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일러준 포수의 철칙을 잊지 말아라. 군대에 들어가면 언젠가는 짐승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짐승을 상대해야 할 날이 올 거다.”

신포수는 내가 산을 내려가기로 한 날부터 산과 계곡을 데리고 다니며 밤낮으로 나를 가르치고, 가르친 것을 확인했다.

“포수의 오 대 철칙이 뭐라고 했었냐?”

“지피지기가 첫 번째고, 그다음이 추격필포, 과감무쌍, 일격필살, 마지막이 산야일체지요.”

어제, 마지막으로 가르쳐준 게 산야일체였다. 신포수는 사냥의 마지막 승부는 산야가 결정한다고 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모두 사람의 일이지만 마지막 다섯 번째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산에서는 인간도 짐승들 중 하나일 뿐이야. 짐승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산야가 내 편이 되어주어야지.‘

”어떻게요?“

”어떻게…… 기러기가 나는 높이와 꿩의 잠자리는 내일 바람의 방향과 비의 양을 알려주고, 노루와 멧돼지의 철수 시간은 모레의 이동 계획을 예고해주지 않니. 산세와 지형, 하늘의 움직임을 알고, 내가 그 산야의 일부가 되면 산야는 내 편이 되어주지.“

어느새 우리는 3부 능선까지 내려왔고 작별의 순간이 왔다. 낭림산맥의 언덕과 계곡, 풀과 나무는 물론이고 해의 기울기와 바람의 방향까지 읽어내던 신포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와 네 아비는 민란의 막내 포수와 살수로 만나 패배하고 굴복하였지만 아무도 배신하지는 않고 살았고, 죽었다. 네 아비는 구차했지만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단 걸 잊지마라.“

신포수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저씨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득령으로 가세요. 아주머니가 기다리잖아요.“

신포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 포수막을 떠나겠지만 사람의 세상으로 가지는 않는다. 포수로 짐승의 질서 속에서 살다가 어느 산자락에선가 죽을 것이고, 짐승의 먹이가 되겠지. 그래야 공평한 것일 테니까. 이왕이면 호랑이의 먹이면 좋겠지만 늑대나 들개의 먹이라고 해도 아주 나쁘진 않을 거 같아. 가라.“


-방현석, <범도 1>, 문학동네 2023, 56-58쪽.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동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