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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작

동아기획

by 영진

척박하고 어쩌면 누추했던 시절이지만, 위안이 되는 존재는 있었다. 기자에게는 동아기획이 그랬다. 조동진, 김현식, 들국화, 장필순, 시인과 촌장,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 신촌블루스, 한영애, 빛과 소금, 푸른하늘, 박학기, 이소라…


대부분 곡을 쓰고 연주도 했던 동아기획 소속의 뮤지션들은 곡을 받아 노래만 불렀던 이전 가수들과 달랐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불렸던 이들은 TV 출연보다 라디오와 공연에 주력했다.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김현철의 ‘오랜만에’ 등은 지금 들어도 세련됐다.


최근 발간된 <동아기획 이야기>(이소진 지음)라는 책에 따르면 가수였던 아내의 이름을 건 레코드점을 운영했던 동아기획의 김영 대표는 좋은 음악이면 된다는 확신으로 기획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뮤지션들을 존중하고, 국내 음반의 열악한 사운드에 문제의식을 느껴 스튜디오 녹음 등에 전폭 투자했다. 그런 동아기획에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동아기획이 묻은 음악들은 어떻게 달랐을까. 담백함과 풋풋함, 서정적 아름다움 등으로 기억한다. 책의 저자는 메시지에 주목했다. “힘든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마음의 짐을 덜고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155쪽)


저자는 동아기획의 유산에 대해 말한다. “팝 음악적 성향을 띠면서 완성도 높은 연주 실력이 뒷받침된 동아기획의 음악은 새로운 세대와 조응하면서 이들의 환호를 끌어내고 동시대를 대표할 만한 정서를 만들어갔다. … 이는 한국 대중음악의 자생력을 높이는 진전이기도 했다”고 했다. 현재 K팝의 기반은 동아기획, 그 전후의 의식 있는 기획자와 뮤지션들의 노력이 하나하나 쌓여 만들어진 것일 터다.


-경향신문, 2025.8.7. 기사 <동아기획과 K팝> 중에서




’동아기획‘이라는 반가움에 나도 기억을 불러내 본다.


나 역시 위 글이 기억하는 동아기획 소속의 가수 모두를 기억하고 좋아한다. 그들의 이름만 보아도 당장 흥얼거리게 된다.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조동진, ’제비꽃‘),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김현식, ‘비처럼 음악처럼’), ‘하지만 후회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이소라, ‘바람이 분다’)


“담백함과 풋풋함, 서정적 아름다움”이 묻은, “팝 음악적 성향을 띠면서 완성도 높은 연주 실력이 뒷받침된 동아기획의 음악”에 나 역시 조응하며 환호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과 정서를 함께했다. 그들의 이름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일들과 사람들도 남겨주었다.




내가 '동아기획'을 처음 만난 건 ’들국화‘ 때문이다. 들국화 음반들을 만난 건 나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이내 들국화에 빠져들었다. 들국화 음반을 손꼽아 기다렸고 발매 즉시 내 방으로 모셔왔다.


음반을 기다리던 날들, 음반을 개봉하던 떨림의 순간, 마침내 음악을 만난 희열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동아기획' 덕분에 ’들국화‘를 만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동아기획에서 발매된 더 많은 음반들과 또 다른 음악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음악이 좋아서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나에게도 ‘동아기획’이라는 기획사가 기억될 정도로 그 존재감은 컸던 것 같다.


“뮤지션들을 존중하고, 국내 음반의 열악한 사운드에 문제의식을 느껴 스튜디오 녹음 등에 전폭 투자했”던 기획사가 있었기에, “그런 동아기획에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기에, 오늘날 “한국 대중음악의 자생력을 높이는 진전”을 이룰 수 있었겠다는 생각에 동아기획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진다.


해서, “현재 K팝의 기반은 동아기획, 그 전후의 의식 있는 기획자와 뮤지션들의 노력이 하나하나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에도 공감이 가는 것이다.



2025. 8. 8.




[에디터의 창]동아기획과 K팝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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