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하라’는 말을 처음 만난 건 ‘사회 현상들에 대한 비평’을 쓰시던 분의 글방 소개 문구에서였다. 그분이 쓰시는 글만 봐서는 도무지 온화함이라고는 찾을래야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강호의 고수가 휘두르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글이었다.
상대가 칼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할 만큼 빈틈없고 예리한 글이었다. 모든 상대를 한칼에 제압한 듯 보였다는 점에서라면, 해서, 평온하고 고요함마저 느껴졌다는 점에서라면 온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때 여쭤보진 않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쓰신 것 같지는 않다. 짐작하건대 제대로 된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온갖 비난과 욕설과도 같은 칼질이 난무하는 글의 전장터에서 싸워야 하는 글의 전사로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글을 통해 제대로 된 비평을 통해 세상을 온화하게 만들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온화하고 부드럽기가 참 힘든 것이 세상살이라면 그저 그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이라는 전장터에서 승리함으로써 그 세상을 온화하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그런 결기의 다짐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순전히 나의 짐작일 뿐이지만 본디 세상살이가 그렇기도 하지만 점점 더 혼탁해지는 오늘이라서 그 분의 ‘온유하라’는 말을 내 몸이 자꾸 불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회 현상에 대한 제대로 된 비평을 위해서도, 온화한 세상을 위해서도 되새기게 되는 말이다. 온유하라.
2025.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