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늘을 본 적이 있을까
조각 구름과 빛나는 별들이
끝없이 펼쳐 있는
구석진 그 하늘 어디선가
내 노래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너는 듣고 있는지
나의 정원을 본 적이 있을까
국화와 장미 예쁜 사루비아가
끝없이 피어 있는
언제든 그 문은 열려 있고
그 향기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나의 어릴 적 내 꿈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
네가 그것들과 손잡고
고요한 달빛으로 내게 오면
내 여린 마음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꺾어줄게
(김광석, ’너에게‘)
가을 하늘이 드높고 푸르게 펼쳐지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김광석 형의 ’너에게‘를 들어주어야 한다.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이라는 가사 때문이기도 하고 그에 어울리는 김광석 형의 목소리가 그려주는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서이기도하다. 내가 그림 속 주인공이 된 것 마냥 행복해지는 노래다.
가을 하늘을 노래하고 있을 만한 아름다운 시절도 못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가을이어서, 아름다운 시절이었음해서 ‘너에게’를 듣는다.
1995년 가수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이후 ‘너에게’는 가을이 오면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 늘 함께하는 노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노래에 대한, 가을 하늘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도하다.
매년 다르게 느껴지는 많은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나이 변화나 기후 변화에 따른 것도 있을 것이고 가을이라는 계절에 겪은 크고 작은 기쁘고 슬픈 일들로 인한 변화도 있을 것이다.
2017년 가을부터는 하늘을 올려다 볼 때면 그 해 여름 쿠바에서 만난 사진 작가를 준비중이라던 에이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폰으로 하늘을 찍고 있던 나에게 ‘하늘을 왜 찍어?’ 장난스럽게 던진 말 때문이다.
에이스가 그냥 지나가면서 던진 말이기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제 막 사진 작가를 준비 중이던 에이스다 보니 사진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것 같다. 자신은 주로 사람이나 사람의 얼굴을 찍는다고 했다. ‘사람을 왜 찍어?’ 다시 만난다면 물어보고 싶다.
에이스의 그 물음이 내 몸에 남은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자연 풍경이나 아이의 해맑은 미소처럼 가치판단이 따르지 않지만 쾌감을 주는 거의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원초미’와 '미담美談'이나 '아름다운 저항'과 같이 복합적인 판단 기준에 따른 ‘복합미’를 구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에이스가 사람을 주로 찍는 것이 그런 ‘복합미’를 미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 진 것이다. 자신이 한 달간 생활했다는 파퓨아 뉴기니 섬의 원주민들과의 생활이 그런 미적 판단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에이스가 아침저녁으로 일출일몰을 찍으러 다니고 지구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염려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원초미’와 ‘복합미’ 모두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나 역시 ‘원초미’와 ‘복합미’를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어느 하나를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복합미’에 따른 아름다운 인간들이 ‘원초미’에 따른 자연이나 아이의 미소나 원주민들의 삶을 지켜내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그들을 파괴하려는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며 살아간다면 ‘원초미’와 ‘복합미’ 모두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2025.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