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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하고 모난 콘텐츠를 만들자

by 영진

9월11일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얼굴·사진>은 24일까지 77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개봉일 1위였던 <얼굴>은 하루 만에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 뒤졌다가 15일부터 다시 10일째 1위를 기록했다. 100만명을 넘을지 궁금하다.


<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 <기생수: 더 그레이>가 인기를 끌며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제작에 참여한 <계시록>을 연출했고, <선산> <괴이> <방법> 등 각본과 제작 등을 맡은 다수의 드라마를 성공시켰고, 일본의 고전 <가스인간>을 리메이크하는 등 국내외 차기작이 줄줄이 늘어선 연상호에게 <얼굴>의 100만 관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얼굴>의 제작 과정은 특이하다. 2억원의 제작비, 20여명의 스태프, 프리 프로덕션은 2주, 촬영은 13회차. 박정민·신현빈·권해효 등 메이저 배우들은 노개런티이거나 일당제로 최소한을 받고 러닝 개런티와 지분을 나눈다고 한다.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요즘 독립영화도 이 정도 소규모로 찍지 않는다. 보통 40억원 이상으로 제작하는 상업영화는 100명이 넘는 스태프가 참여하고 50회 이상, 80회 정도 회차로 촬영한다. 마케팅비가 10억원을 넘었어도, <얼굴>은 이미 70억원 이상의 수익으로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었다.


<얼굴>은 연상호가 직접 쓰고 그린 그래픽노블이 원작이다. 시각장애인으로 전각의 장인이 된 임영규의 아들 임동환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외모지상주의, 개인의 주체성과 타인의 평가질 등 과거와 지금을 막론하고 생각해볼 만한 주제의 이야기지만 상업적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연상호는 대본으로 영화 투자를 받으려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결국 2018년 그래픽노블로 출판했고, 이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직접 투자해 만든 저예산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얼굴>의 성공을 놓고, 칭찬도 우려도 나온다. 저예산 영화의 새로운 시도인 동시에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감독이 작고 신선한 이야기에 도전한 점은 칭찬이다. <얼굴> 같은 저예산 영화를 만든 것은 결국 ‘연상호’라는 브랜드이기에 가능했고 기존의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모두에게 부담을 안겨준다는 점은 우려다. 하지만 모두 ‘연상호’이기에 가능한 찬사이고, 비판이다. 연상호는 상업적인 장르영화를 주로 만들고 있지만, 과거에는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 등 작가주의적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감독이다.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사회의 모순을 강렬하게 드러냈고, 인물과 이야기 모두 독창적이었다. 반면 상업적인 장르영화에서 연상호는 전형적이고 약간 진부하다는 비판이 많다.


최근 인터뷰에서 연상호는 투자 배급사들이 작품의 호불호를 줄여 안전한 작품을 만드는 근래 10여년의 흐름이 재미없다며 “뾰족한 콘텐츠가 팬덤을 만들고, 모난 구석이 있어야 메시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부산행>이 좀비 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넷플릭스 작품들을 통해 팬이 세계적으로 많아지는 등 막강한 명성을 누리는 연상호가 과거에 만들었던 애니메이션의 기운을 되살리는 작품에 도전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부산행>을 만들기 전, 영화아카데미 강의를 하다가 연상호 감독과 종종 만날 기회가 있었다. 노동력과 시간,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연상호는 어떻게 제작 과정을 효율적으로 만들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애니메이션 팬이 많지 않은 한국에서, 게다가 진지한 주제의 작품을 만드는 연상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였다. 새로운 테크닉으로 제작 과정을 가볍게 줄이면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직접 회사를 운영하는 연상호는 단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작가·감독이 갈망하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고민했다. 다른 감독이 연출하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실사 영화 연출에도 뛰어들었던 연상호의 진심은 지금도 그 시절과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얼굴>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하나의 청사진을 그렸다는 점에서 상찬받아야 한다. 밋밋하게 다수가 좋아할 만한 영화들에 투자하는 투자사와 배급사에 간택받거나, 영진위와 지자체 등의 지원금으로 만들어지는 두 개의 길 이외에 기발하고 개성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이 희미한 한국 영화 환경에서는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 <얼굴>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많은 감독과 배우가 나오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2025.09.25. 기사 <뾰족하고 모난 콘텐츠를 만들자> 전문




“뾰족한 콘텐츠가 팬덤을 만들고, 모난 구석이 있어야 메시지가 생긴다”


“연상호는 단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작가·감독이 갈망하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고민했다”


“<얼굴>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하나의 청사진을 그렸다는 점에서 상찬받아야 한다”


“밋밋하게 다수가 좋아할 만한 영화들에 투자하는 투자사와 배급사에 간택받거나, 영진위와 지자체 등의 지원금으로 만들어지는 두 개의 길 이외에 기발하고 개성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이 희미한 한국 영화 환경에서는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


“<얼굴>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많은 감독과 배우가 나오기를 바란다”



2025. 9. 27.




[김봉석의 문화유랑]뾰족하고 모난 콘텐츠를 만들자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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