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해 버리면 안 되는

by 영진

끝까지 밀고 가야지. 끝까지 밀고 간다는 얘기는 많이 하는데 그게 어디까지냐 좀 갑갑한 것이 있다. 뭔가 답이 나왔을 때가 끝까지 간 것이다.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는데.

아도르노가 무슨 답을 놓고 간 게 아니고 돌이켜보면 서독이 야만화 하는 걸 조금 막아준 그런 게 좀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뭔가 어떤 빛 같은 해답 같은 게 조금씩 나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최선’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는 최선일 수 있다. 그러니까 최선이라고 얘기하는 게 이미 뭔가 절대적인 답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다. 후에 보면 차선일 수도 있다. 그때는 최선. 후에 보면 차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독, 프랑스 모두 68로 막 휘말려 들어가는 과정이 있다, 68 운동이 체제를 바꾼 건 아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한 게 아니다. 내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재생산 구조를 유연하게 더 강고하게 한 측면이 있다.


끝까지는 못 간 것이다. 이때 끝까지 간다는 건 뭐냐 했을 때 본질적인 부분을 어떻게 정면 돌파하느냐 했을 때, 근본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다는 건 아는데 뭔가 지금 당장 어떻게 안 되니까, 우회하거나 아니면 적당히 조율하거나 하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제기했던 반권위주의, 다양한 차이에 대한 존중, 비동일자에 대한 배려 등등 이런 것들을 포함하면서 지배 체제를 바꾸는 쪽으로 목표 차원에서는 다 좋은데 그것들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그게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거나 그건 아니다.


예컨대 국가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지배 계급의 지배 도구라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느냐. 방법상의 문제도 있다. 어느 정도 국가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생산관계를 바꿔야 하고 생산수단은 국유화냐. 사회화냐. 이런 걸로도 방법상으로 충돌하는데. 그게 같이 어떻게 되느냐는 방법도 문제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아도르노 선에서 답이 나올 수 없는 것인데. 그렇다고 무의미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방법만 옳다고 할 수 있냐,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이게 지금 최선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근본적인 문제, 자본주의든 그걸 포기해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하영진, '정면돌파', <도시의 무지개> 269-271쪽.




도시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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