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전쟁이나 사회적 재난을 직접 겪지 않았으니 운 좋은 삶인가 싶다. 그럼에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아찔한 순간들은 있다. 암벽 등반을 하다 추락했던 순간, 졸음운전을 하던 운전자가 중앙선을 넘어 내가 운전하던 차와 키스했던 순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지만 운 좋게도 약간의 타박상에 그쳤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스터디나 세미나 하면서 공부하던 시절을 꼽는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것이 6개월간 중남미 여행을 했던 시간이다. 애초에 그곳이어야 할 이유도 여행의 목적도 아니었지만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축복 같은 시간이었다.
중남미를 여행했던 시간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났건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씩 이야기하게 된다. 그 중에는 그곳이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도 자리한다. 어쩌다 남미 여행 이야기를 하게되면 여행하면서 위험한 일을 겪지 않았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곳만 아니라 어느 곳이든 위험하다는 장소에만 가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고산병을 경험했던 때다. 그곳에 가는 여느 여행자들처럼 나 역시 고산병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던 터라 의식하며 높은 고도에 적응하고 있었다.
한데 에콰도르 키토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갑작스레 3,000미터 이상의 화산에 올라가서 30여 분을 걸은 것이 화근이었다. 심한 구토와 눈물 콧물에 잠시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그게 전부였다. 고산병에 대해서 많은 여행자들에게 들은 바를 종합해 보면 별다른 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찾아올 수 있으니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 오렌지, 타이레놀 같은 두통약, 그곳에서 즐겨 마시는 마테차 정도였다. 그보다는 서서히 고도에 적응하는 것이 약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서 비로소 아찔했나 싶은 순간도 있다. 콜롬비아 보고타를 출발하여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를 거쳐 대략 4개월 되던 시점에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에 이르렀다.
거기서 브라질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중미의 파나마로 가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갈 것인가. 비행기로 가면 금방이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라는 도시에서 요트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고 내 인생에 언제 요트를 타보겠나 싶어 왔던 길을 되돌아 며칠을 버스를 타고 카르타헤나에 이르렀다.
한데, 마침 휴가철이라 요트에 자리가 없었고 일주일을 기다려도 자리가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뚜르보라는 도시에서 배를 타고 국경 섬을 거쳐 파나마로 가기로 했다. 그 뚜르보로 가기 위해 도착한 도시에서 버스가 끊겨 어찌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한 청년이 승합차가 있다고 했다.
그 청년이 미심쩍었다면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승합차의 인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결국 그 청년과 승합차의 운전자와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 이렇게 넷이서 뚜르보로 출발했다. 애초에 늦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차에 이상이 있다며 이상한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어느 외딴곳에 도착했다. 자신들의 차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어떤 봉변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 당시에 전혀 그런 위협을 느끼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내 옆에 있던 그 순한 느낌을 주던 친구 때문인지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상황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쩌자고 따라갔냐고 큰일 날뻔했다고 말하곤 한다. 그제서야 나는 그랬나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정도의 큰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순전히 그 순한 느낌을 통해 믿음을 주던 그 친구 때문일 것이다.
자일(밧줄) 하나에 나의 목숨을 걸고 이루어지는 암벽 등반에서 자일을 잡아주는 상대를 믿을 수 없다면 암벽 등반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운전자들이 중앙선을 넘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차를 운전해 도로로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믿음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자일을 잡아주는 상대를 믿을 수 있는가. 도로의 운전자를 믿을 수 있는가. 낯선 여행지의 낯선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그건 순전히 나의 판단일 수밖에 없다. 믿을지 말지 내가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 믿음은, 내가 그 대상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그 대상을 믿을만한 대상으로 만드는 것, 대상이 나를 믿도록 만드는 것, 그리하여 서로의 믿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가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2025. 10. 27.
대문사진-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중앙미술관. 영진찍음. 제목, 작가명 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