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사고와 감각’을 하며 ‘고립’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사상가나 예술가라고 불리는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다. ‘과도한 사고와 감각’과 ‘고립’은 ‘창작’을 하는 사상가나 예술가의 기본 자질이기 이전에 기본 ‘조건’일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 사상가나 예술가적인 기본 자질(기질) 때문에 ‘과도한 사고와 감각’을 하고 스스로 ‘고립’되기도 하지만, 그런 자질은 크게 없는 것 같지만 사상가나 예술가가 되고 싶어서 고립된 ‘조건’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나의 경우는 그런 기본 자질이 두드러졌다고 할 수 없지만 어쩌다 보니 그 길에 들어섰고 그런 자질과 조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갈 길이라고 여기며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나에게는그 자체가 의미 있는 길이라고 여긴다.
더 나아가 나는 ‘과도한 사고와 감각’을 하며 ‘고립’을 자처하며 창작을 하는 삶을 권장하며 예찬하기도 한다.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하며 어떠한 삶을 살든, 사고와 감각, 고립을 통한 사상과 예술의 창작은 수반된다고, 수반되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처럼 나는 모든 사람이 사상가이며 예술가라고 여기며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과도한 사고와 감각’을 넘어 ‘편집증이나 과대망상’, ‘천재성이나 광기’도 사상가나 예술가의 기질에 속한다. 그런 병적이라고 할만한 기질이 있기에 천재적인 사상가나 예술가들이 탄생한다고 해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병적인 기질을 자신의 사상으로 예술로 승화시켜낸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병적이지만은 않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해내면서도 혹은 그를 바탕으로 창작을 하는 사상가나 예술가도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창작을 하는지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자신만의 기질이나 삶의 방식, 창작 방식이 있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창작한 결과물인 ‘예술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작품에 그들의 삶이, 창작과정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그 작품이 우리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있을 것이다.
그 결과물이 자신에 대해, 자신이 만들고 있는 세상에 대해 얼마나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설득력을 가지는가라는 것이 그 예술작품이 담고 있는 중요한 진리 내용이 될 것이다. 그 결과물이 어떠하든 그 진리 내용이 무엇이든 나는 누구나 ‘창작하는 삶’을 누리기를 그를 통해 삶을 창작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2025.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