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전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바스타니의 가속주의가 위험한 진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저 신기술의 가속만 추구하다 보면, ‘구상’과 ‘실행’의 분리가 한층 심각해져서 결국 ‘자본의 전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극히 일부의 전문가와 정치가만이 어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까 구상하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자본은 권한이 있는 일부만 포섭하면 된다. 그러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기술이 있어도, 극히 일부에게만 유리한 해결책을 ‘위에서’ 일방적으로 도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최근 기후 변화 대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기술인 ‘지구공학geoengineering’을 예로 들어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지구공학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지구 시스템 자체에 개입(224)하여 기후를 조작하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구를 냉각시키기 위해 성층권에 황산 에어로졸을 뿌려서 태양광을 차단하는 기술, 우주에 거울을 설치해 태양광을 반사하려 하는 기술, 식물성 플랑크톤이 대략 증식해 광합성이 촉진되도록 바다에 철가루를 뿌려 수중을 비옥하게 하는 기술 등 이런저런 기술이 고안되고 있다. ‘인신세’ 개념을 제안한 파울 크뤼천도 지구공학적인 방식을 주장한 적이 있으니, 지구공학은 그야말로 ‘인신세’를 상징하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렇지만 대량 살포한 황산과 철가루가 기후 및 해양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생태계와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점이 많다. 산성비와 대기오염이 심각해지고, 수질오염과 토양오염 탓에 농업과 어업이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강우 패턴이 바뀌어버리면 일부 지역의 상황은 크게 악화될지도 모른다.
그처럼 모르는 게 많지만, 피해가 미국과 유럽이 아닌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향하도록 하는 계산만은 면밀하게 이뤄질 것 같다. 부하를 외부로 전가하여 물질대사의 균열을 더욱 깊게 하는 자본주의의 상투적인 이야기가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가와 자본가가 결탁하는 하향식 사회가 정말 바람직하다 할 수 있을까.(225)
ㅣ출처ㅣ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다다서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