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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르크스는 미래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을까

by 영진

왜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을까


이제 드디어 마르크스가 상상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그런데 이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의 모습을 애매하게 남겨 두었다는 난제에 곧바로 부딪히게 됩니다.


여기에는 그런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어렵다는 자명한 이유도 있고, 『자본론』이 미완인 채로 끝났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미래 사회를 상상할 때 현재의 가치관이나 상식을 무비판적으로 투영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현재 사회의 욕망이나 젠더관 등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의 일하는 방식과 자유·평등을 구상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는 그때그때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르크스에게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어떤 사회를 만들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마르크스 연구자들은 소련이라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체제가 있었다는 것에 안주해서 포스트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 소련의 붕괴를 맞이했고, 그 뒤 자본주의 이외의 사회상을 상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여태까지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상을 그려 내지 못했습니다.


이 난제를 회피하려는 듯 2000년 이후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책으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코뮤니즘론과 분리해서 『자본론』을 참조하면서 과로사라든가, 공황이라든가, 환경파괴라든가 하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논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마르크스는 자신의 건강과 가족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본론』을 집필했습니다. 자본주의사회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필생의 프로젝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 편승하는 많은 사람은 더 이상 ‘코뮤니즘’을 내걸지 않습니다.


‘지나친’ 자본주의를 비판할 뿐, 요컨대 신자유주의 비판에서 멈춘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르크스주의의 독자성은 사라지고, 그 존재 의의가 의문시되어도 도리가 없고, 쇠퇴하고 말 것입니다.


역시 우리는 코뮤니즘이라는 유토피아를 상상하기 위해 『자본론』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서는 이 난제에 감히 도전하려 합니다.


[출처]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arte 2024, 197~200.



202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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