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담긴 온기

by 영진

회사에서 만난 인생에 흔한 스치고 스치는 사람들일 뿐인데, 누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10년을 겪어도 이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담담하지 못한 지 모르겠다. 퇴근길에 생각을 쭉 해봤다. 그건 내가 받은 게 많아서였다.(인사이동 증후군)



타인과 나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정직하게 사는 것. 고마운 일에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한 일에 미안하다고 말하고, 내가 저지른 잘못을 용기 내어 인정하는 것 등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일이다. 그 기본적인 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우리 회사에 끌려오는 손님들이 아주 많다. 왜 남을 속여서 돈을 빼앗고,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고, 끔찍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기본의, 단순함의 미학)



아무리 내가 좋아서 붙잡고 싶은 인연이 있다고 해도 그건 억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시공간적 조건이 성숙했을 때여야만 이루어지는 거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간 함께했던 익숙한 사람들이 너무 그립고 생각이 나도 꾹 참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를 더 크게 가져보려 한다. 그 낯섦이 비록 당장 무섭고 어려울지라도, 그걸 극복하고 적응해 내야만 내 세계가 또 한 뼘 성장하고 넓어질 테니까.(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



10대엔 공부만 하고, 20대부터 30대까지는 일만 하고, 돌이켜보면 나 참 팍팍하게 살았다. 고생 많았네, 짠하네 싶은데. 그 사이사이 스쳐지난 사람들과 나눈 말 한마디, 함께 나눈 웃음 속 위안, 그 안에 담긴 온기 같은 것들이 깜깜한 밤 가로등처럼 군데군데 빛으로 남아서, 그 밤이 그렇게 외롭고 괴롭지만은 않았던 듯 싶다.(노동의 기쁨과 슬픔)



돈이 많으면 물론 좋다.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하고, 안 하고 싶은 것도 마음편히 안 할 수 있고. 그래도 그 돈을 더 많이 갖자고 사람들의 선한 마음과 본인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이용하고 짓밟는 행위는 아주 악해서 죽어도 싸다. 누구는 그 돈 때문에 살인을 하고, 누구는 그 돈 때문에 자살을 한다. 한 가정이 무너지고, 무엇보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졌던 다정한 호의와 신뢰, 관계가 파탄난다. 그리고 피해자 마음엔 괴로운 자책이 남는다.(사기 피해자의 마음)



할머니는 텃밭에 꽃을 잔뜩 심어놓고, 그 꽃들을 돌보며 소녀처럼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가서, 나는 때 이른 아빠의 장례식에서보다 더 많이 울었다. 가족들은 내 서러운 울음을 보고 따라 울었다. 내가 너무 예쁘고 귀해서, 내가 흘리는 눈물까지 아까워하던 우리 할머니. 울림소리가 예쁜 옥랑이라는 이름의 우리 할머니. 다음 생에는 꼭, 내 딸로 태어나주세요.(할머니, 우리 할머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용서한다는 거다. 나를 슬프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괴롭게 했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있었던 일은 이미 과거로 흘러가 버렸고, 용서하지 않고 되새겨 봐야 이미 지나가 묻어버릴 수 있는 일에 오히려 숨을 불어넣어 주는 꼴이다. 그냥 담담하게 용서하고 잊어버리면, 상처가 아문 후 새살이 나는 것처럼 없던 일이 된다. 흉이 조금 남을 수는 있어도 아문 살에 더 이상 통증은 없다.(유언)



니체는 '초인(Ubermensch)',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같은 개념을 고통으로 얼룩진 삶의 허무에 채워 넣을 것으로 제시해 준다. 엉망인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오. 이런 뭐 같은 삶? 그럼에도 나는 수용한다.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기꺼이 또 한 번 살아주지. 하는 식이다. 그 태도가 너무 멋져서, 초롱초롱한 스무 살 새내기였던 나는 앞으로 꼭 그렇게 살기로 다짐했다.(신은 죽었다)



2025. 11. 29.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