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설계자

by 영진

배우 이순재씨가 영면했다. 기분 탓일까. 2025년은 국가를 막론하고 각 분야의 여러 거장이 우리 곁을 떠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그중 헤비메탈의 전설 오지 오즈번(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2025년 7월22일은 ‘어둠의 왕자’가 숱한 명곡을 뒤로한 채 어둠으로 돌아간 날이었다.


헤비메탈의 원조가 누군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헤비메탈의 특징은 ‘블루스 없음’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음악이 건조해야 한다. 블루스의 끈적이는 느낌이 나서는 안 된다. 오지 오즈번이 보컬을 맡았던 블랙 사바스의 음악이 정확히 그랬다. 따라서 오지 오즈번은 헤비메탈을 발명한 몇몇 음악가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이것이 바로 1970년대 비평가들이 오지 오즈번과 블랙 사바스를 싫어한 이유다. 비평 집단은 유구한 블루스 전통이 거세된 그들의 음악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1970년대 초반 당시 비평가들이 썼던 표현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연히 록 장비를 발견한 네 명의 크로마뇽인의 가당치 않은 억지 연주” “음악 바보의 농담”. 즉, 비평가들은 블랙 사바스의 음악이 얼마나 혁신적인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오지 오즈번의 광기로 뒤틀린 보컬과 토니 아이오미의 낮게 조율한 기타 연주가 미칠 영향력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기실 블랙 사바스의 경우만은 아니다. 시대를 앞서간 것을 넘어 과거에 뿌리조차 내리지 않고 있는 듯한 무언가를 접할 때 인간은 대개 그것을 부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안다. 오지 오즈번과 블랙 사바스가 헤비메탈의 최초 설계자였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마지막으로 블랙 사바스라는 이름은 악마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공포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사람들이 돈 내고 공포 영화 보는 것처럼 음악도 그럴 수 있겠다”라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경향신문, 2025.11.30. 기사 <혹평을 딛고 전설이 되다> 전문




남의 글을 옮기는 이유는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의 기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글도 남보다 나를 위해 옮겨둔다.


‘음악이 건조해야’ ‘최초 설계자’


나의 삶과 글에서 ‘욕심’의 영역이다. 좀 더 건조해지고 싶다. 그 건조함이 위 글에 쓰인 '블루스의 끈적함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고, <담백한>이라는 글에서 썼듯이 ‘욕심이 없고 순박하다’, ’연하고 밝다’와 같은 ‘담백함’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둠의 왕자”라거나 “혁신적”이라는 표현들을 행성 B612에서 온 어린왕자가 전해 준 세상 정도로 받아들인다. 세상이 어둡기만 한 것도 밝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어린왕자의 행성은 ‘연하고 밝은’ 세상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나는 그 정도의 세상을 '혁신적'이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어린왕자의 행성과 같을 이유도 없겠고 그에 못지않은 또 다른 행성들도 존재하겠지만, 나의 글과 삶이 남다른 세상의 ‘최초 설계자’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죽은 이후의 평가가 그러하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살아 있는 동안은 나의 글과 삶을 ‘건조하게’ 드러낼 뿐이다.




나를 위해 쓰는 글이지만 오지 오스본과 블랙 사바스만 아니라 영면하신 이순재 배우, 그가 출연했던 시트콤 <하이킥>시리즈도 자신들의 길에서 ‘최초의 설계자’라 불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위 글을 공유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2025. 12. 1.




[반복과 누적]혹평을 딛고 전설이 되다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