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기록해보기로

by 영진

비록 세상에 비슷한 장미가 수도 없이 많을지라도, 어린 왕자의 행성에 있던 장미가 유일하고도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네가 시간을 쏟아 그 장미를 길들였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그 장미에 대한 책임이 생기는 거라고. 결국 어린 왕자는 자신의 장미에게 돌아간다. 사랑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이 전부인 장미를 보살펴주기 위해.(어린 왕자)



얼마 전 외할머니가 갑자기 나한테 많이 미안했다고, 10년 간 자식 손주들이 준 용돈을 모아 내가 이사할 때 보태 쓰라며 종잣돈을 건넸다. 나는, 할머니 이제 다 늙고 죽을 것 같으니까 참회해서 지옥 안 가려고 그러지? 했지만. 할머니도 내가 진작 용서한 걸 안다. 죽은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저주를 퍼붓던 마음보다, 그냥 털어버리고 웃어버린 마음이 훨씬 편안하다.(나의 원죄)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 적어도 내 생활 반경 사람들에 한해선 확실하다. 술은 몸에도 해롭고, 정신에도 해롭고, 나 말고 타인에게도 해롭다. 그러니까 술을 절대 과하게 마시면 안 된다. 나는 오늘부터 술을 끊기로 결심한다. 정말이다.(주사(酒邪)의 역사)



사람들은 공무원에 대한 인식으로 흔히 동사무소 사례를 들며 불친절하고 무기력하다는 식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언급하곤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명감을 품고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공무원들도 분명 많다. 그러므로, 공무원을 조금만 더 존중해서 대해주고, 추징당할 죄를 범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추징의 추억)



나와 7만 킬로를 함께 달리며, 깨지고 찌그러지고 녹슬고 때가 타서 만신창이가 된 내 수족 같은 뽀동이를 떠나보낼 날이 온다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나 타인을 상대로 유혈 사태는 없었다. 그 점이 정말 천만다행이다. 앞으로는 뽀동이를 더 조심스럽게 소중히 다루며 다니려고 한다.(내가낸데식 운전법)



머릿속에 가득 차 웅성이며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을 활자에 단정하게 가두어 옮겨적고 나니, 늘 복작복작 시끄럽던 마음이 이상하게 훨씬 편안해졌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어떤 치유나 해소의 기분이 든달까. 그래서 내 과도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 한, 그리고 시간과 컨디션이 따라주는 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기록해보기로 한다.(목(木)이 없는 사주)



취집을 잘했다며 팔자가 폈다고 안심하는 여자들이 있다. 내 생각엔 여자도 최소한의 경제적인 능력을 갖춰야 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스스로 권리를 찾아 박차고 나올 수 있을 만큼은 준비가 된 상태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굴레에 갇히고 만다. 그 사이에 자녀까지 있다면 더욱 비극적인 굴레에 여럿이 갇히게 되므로.(가정폭력)



무더운 여름날 태어나서 그런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특히 초여름. 지독한 꽃샘추위가 싫어 남들보다 더 늦게까지 꽁꽁 싸매고 다니던 두꺼운 껍질옷을 벗고, 내가 좋아하는 하늘색, 연보라색 같은 옅은 파스텔톤의 살랑살랑 가벼운 옷을 꺼내 입으면 기분도 함께 산뜻해진다. 여름 하늘의 청량한 색도 벅차게 좋고, 이글거리는 태양도 강렬해서 좋다. 여름 바다의 파도와 윤슬은 반짝반짝 빛나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바다나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면 가슴속에 꽉 들어찬 걱정이 커다란 물에 섞여 흘러가는 것만 같고.(가장 좋아하는 계절, 여름)



2025. 12. 2.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