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대화를 통해서 합의에 이른 것이 아니다. 누구든 자신들이 진리일 수도 있다. 진리는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진리가 진리임을 검증해 나가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진리가 무엇인지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겠다는 태도는 진리 자체를, 자신들의 진리마저 부정하는 태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페터 지마는 ‘이론과 이데올로기’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검증된 과학에 가까울수록 이론에 가낍고, 과학과 멀어질수록 이데올로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 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진리와 허위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과학이라면, 이론이라면, 검증을 통해 부단히 진리에 가까이 가려 할 뿐이다. 그런 만큼 진리일 가능성은 커질 뿐인 것이다.(진리에 가까이 가려 할 뿐)
이론은, 과학은 자신의 유불리, 이익에 앞서 ‘사태 자체’에 충실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론가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이익과 권력 앞에서 '사태 자체'에 소홀하거나 외면하기도 한다. 그처럼 진리와 양심을 저버리는 순간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실하게 되기에 그런 이론은, 과학은 더 이상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양 생명력을 잃게 된다. 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권력을 피해 망명을 하거나, 이론이기를 그만두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권력이냐 과학이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과학을 한다면 현실의 진리, 양심의 존엄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 그와 같은 본연의 과학을 하지 못한다면 과학을 그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론의 숙명일 것이다.(이론의 숙명)
2025. 12. 31.
문장 출처 1 - 감사히 한 걸음, 34-35쪽.
2 - 웃으며 한 걸음, 31-32쪽. 괄호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