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

by 영진

자전적인 에세이를 쓰면서도, 저 너무 슬퍼요 고통스러워요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하는 식의 감정선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괜찮다고 했다. 용서한다, 단단하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리한 감각이 발달한 어떤 사람들은 내가 비워둔 행간에서 나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던 어떤 슬픔이나 고통을 감지해 냈다. 내가 스스로 속이고 숨기던 것들을 알아보신 거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는 채로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하기로 했다.(성공한 사람의 고백)



아프리카 TV에서 여자들이 굳이 노출을 왜 하지? 글만 써도 이렇게 사람들이 돈을 보태주고 싶어 하는데. 라는 식으로 가볍게 넘기며 도움은 사양하면서도, 그 따뜻한 마음 덕분에 뜨겁게 차오르는 내 눈과 가슴의 울렁임은, 사실은 내가 그간 많이 추웠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따뜻한 손들을 저에게 내밀어주셔서, 혼자만의 왕국에 가득 차 있던 빙하를 녹여주셔서, 아주 많이 감사합니다. 하고,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해 봅니다. 오늘은 여러 분들 덕분에 조금 눈물이 났어요. 앞으로는 울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성공한 사람의 고백)



그리고 작가님들 브런치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독특한 이력이나 평소 작품 톤, 기조, 사상 등을 고려해 협업특성에 맞게 다채롭게 구성하고 싶었습니다. 제 브런치 구독여부, 평소 저에 대한 관심과 애정, 덧글, 라이킷, 참여호소 등의 마음이 흔들리는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오로지 작가님들의 작품세계만 보고 결정했어요. 저는 공정의 덕목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수사관이기 때문에 사적 감정에 흔들릴 수 없었습니다.(<공지4>크리스마스 매거진 협업 명단)



환생을 하면 나는 키가 최소 177센티미터 이상은 되고, 얼굴은 잘생긴 남자로 태어날 거다. 외모를 가진 대신 부유한 가정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열심히 살아서 일으키면 된다. 하지만 환생의 삶에서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은 내가 이번 생에서 가장 간절히 원했지만 가지지 못했기에 필수 조건이다. 아빠의 직업은 철도 공무원이면 좋겠다. 돈은 넉넉하게 벌지 못해도 성실하고 가정에 헌신적이면서 자상한 남편과 아빠 느낌이 난다. 엄마는 사랑과 공감이 넘치는 가정주부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다른 형제가 없는 외동아들. 이번 생에는 부족하고 한정된 자원으로 동생에게 양보를 강요당했던 상황이 지겹고 싫었기 때문이다.(환생(還生)



그런 환경에 너를 둬서 미안해, 더 많이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그렇게 원하던 꿈을 지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 식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본 적도 없다. 포기했고. 그래서 이제 와서 내가 알아서 혼자 치료를 받겠다는데, 엄마 딸이 병원에 다니며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건 또 싫은가 보다. 내 머리와 마음이 곪아 터지든 말든, 지금까지 그랬던 대로 계속 엄마가 자랑할 수 있는 완벽한 기능을 선보이는 딸로 남아줬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 잘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딸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기능적 인간)



선택과 집중에는 필수적으로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선택되지 못한 것들은 그곳에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이 버려진다. 아까워도 어쩔 수 없다. 내 세상 속 초점이 맞는 곳에만 한정하여 반짝이고 다채로운 색이 입혀지고, 그 밖의 것들은 흑백 사진처럼 조용히 묻혀 스러져 간다. 하지만 모든 게 다 번쩍번쩍 다채롭게 보이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을 거다. 흐릿한 배경이 있음으로써 피사체가 선명히 살아나는 것처럼, 나만의 이 불편한 블러세상도 나름의 예술 작품 같은 면이 있다고 본다. 여전히 욱신거리고 있는 내 양쪽 정강이의 상처도 마치 낙관(落款) 같은 거랄까.(선택과 집중)



죄수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수갑을 차고 교도관에게 붙들려 나가는 피의자의 뒷모습은 항상 안쓰럽다. 경험이 미천해서 정말 악한 피의자를 아직 못 만나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조사자와 피조사자로 앉아있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으로서 한 사람의 인생과 속내와 후회와 외로움을 알게 된 이상 연민의 마음이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조사를 마치고 부장님께 그래도 사람은 착한 것 같아요, 했다가 길에서 칼 들고 설치는 사람을 못 만나봐서 그런 소리를 하지. 하고 쿠사리만 먹었다.(칼 휘두르고 다니는 아저씨)



내가 추구하는 관계의 온도도 그쯤 된다. 너무 불같은 사랑은 부담스럽다. 그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있자면 너무 뜨거워서 질식하거나 타버릴 것만 같다. 반면 너무 차가운 건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미지근에서 약간 이상, 부담스럽지 않은 은은한 온기 정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기에 아주 오랫동안 꺼지지 않고 지속 가능한, 그런 임상적 온도가 좋다. 이 임상적 온도란 결국 나만의 어떤 이상적 온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30℃전후쯤, 나의 온도)



살다 보면 몸도 마음도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까지 느껴지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온도계를 들이대고 재보지는 못해서 확실히는 모르지만 일반적인 사람 체온 36.5℃를 넘을 것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 곁에 있다 보면 그 온기에 내 체온도 조금 올라가 훈훈해져버리고 만다. 그 상대를 전용 난로처럼 사용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가 뿜어내는 훈훈함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곁에 머물 때 추위가 녹으면서 노곤노곤 마음이 풀어지고 안전해지는 그 느낌이 참 좋았어서 종종 생각이 난다.(30℃전후쯤, 나의 온도)



2025. 12. 11.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