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모양과 방향

by 영진

하작가님은 나에게 매혹됐다. 그걸 너무 명확하게 알겠다. 그래서 그 마음을 무시하고 짓밟았다. 그는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내 세계로 다시 포함해왔다. 나는 사람의 눈을 본다. 맑고 연하고 크고 깊은 눈은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나는 그 눈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그 작가님의 눈을 나는 봤다.(취글-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을 전제로 한다. 행간의 의미를 해석할 줄도 알아야 한다. 표현을 고르고, 문장을 정렬하고, 배치하고, 설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삶과 사람을 대할 때도 적용이 된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이 표현하지 않는 지점을 느껴 해석해 주고, 예쁜 표현으로 마음을 보듬어 주고, 서로의 다쳐 아픈 마음을 재정렬하고, 재배치하고, 단단히 설계해 준다. 글을 쓰길 정말 잘했다. 이런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고.(팬미팅 후기)


다시 황폐해진 내 밤나라에 갑자기 달이 떴다. 하나 둘 별도 떠올라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이 조금씩 보인다. 사실 애초에 태양은 내 세계에 크게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크고 밝고 눈부시고 그래서 부자연스러웠다. 내 세계에 맞는 별들이 찾아와 조금씩 빛을 내어주고 있다. 서로 이해가 가능한 별들이, 적당한 거리에서 간격을 유지한채 각자의 온도로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며 떠오르고 있다. 커다란 달과 별들이 미지근한 빛을 내 깜깜한 밤을 밝혀주게 되었다. 어느 춥지 않은 가을밤에 든 생각이다.(이해와 인정욕)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일상은 항상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난데없이 깨져버리곤 한다. 그리고 행복한 일상은 꼭 오래 누리지도 못한다. 너무 짧다. 이래서 사람들이 회사에 정을 붙이거나 의미를 두지 말라고 하는 걸까. 방장을 잃은 계장님은 말수가 극도로 없으시다는데, 우리 부장님 하루 3시간 말상대는 앞으로 누가 해주지. 대화상대를 잃어버리셔서 우울증에 걸리진 않으실지 걱정이다. 부장님은 벌써부터 아이고아이고, 한숨을 푹푹 쉬신다.(고용불안)



부장님 제가 부담을 드리려는 건 아닌데요. 저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제 세상에 ㅇㅇㅇ파 41세손은 부장님 뿐인 거죠. 회사의 또 다른 자식 같은 ㅇㅇㅇ파 42세손인 제가 쫓겨가지 않도록 힘을 잘 써주셔야 합니다.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니에요. 제 친동생 같은 ㅇㅇ이(부장님의 딸)의 수능 대박을 기원합니다.(고용불안 2)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회사에서 호부(呼父)를 허락하는 작은아버지가 직속상사고. 상냥하고 예쁜 실무관님은 지각이 잦은 내가 출근점검에 걸리지 않게 사전정보를 알려주고. 비록 내 애절한 팔동작을 소금쟁이라고 비하하긴 하셨지만, 본인과 전혀 무관한 옆방 아기계장이 뭘 모르는 것 같으면 발 벗고 나서서 다 알려주시는 든든한 선배 계장님도 앞에 계시고. 요즘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떠올라 꼭 대낮처럼 밝게 빛나는 것 같다.(524호)


내 지난한 사고과정의 장점도 물론 어느 정도 있겠지만, 과몰입과 현실 효율성 저하, 과로와 탈진의 문제가 크다. 내 딱한 뇌는 휴식의 시간이 없다. 계속해서 뭔가를 하느라 바쁘다. 망각을 좀 했으면 하는데 그걸 싫어하는 것 같다. 자극을 받으면 영상을 생성해 내고, 동시에 과거의 영상도 재생하고. 나는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한 뇌를 가졌다. 비선형적으로 끝없이 팽창할 줄밖에 모르는 자기 파괴적인 뇌.(기억의 저주)


타인의 귀한 마음을 받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고 감사한 일이지만, 동시에 무거운 일이다. 책임감이 필요하다. 그저 받기만 하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부채감과 죄책감이 쌓인다. 그 감정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도 마음을 그만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만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줄 수 있는 사랑도, 받고 싶은 사랑도 그렇게 커다랗지 않다. 나의 그것과 모양과 방향이 잘 맞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부드럽지도 거칠지도 않은 질감의 마음이 지금 내게 필요하다.(마음의 모양과 방향)



2025. 12. 19.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