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가

by 영진

매거진 Ubermensch의 주인공 U작가와 나의 닮은 점은 별로 없고 다른 점은 꽤 많아 보인다. 외적으로 드러난 나이나 성별, 자라온 환경, 성향이나 기질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과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U작가의 글을 처음 접할 무렵 어느 글에 ‘제가 겪었던 아픔을 겪어왔고 겪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겪을 것 같아서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취지의 댓글을 남긴 적이 있다. 내가 말한 그 ‘아픔’은 사회의 부당함이나 불합리한 상황에 적응이나 타협을 잘하지 않음으로서 겪게 되는 것들이다.


U작가가 동의하든 않든 글을 통해서 U작가에게서 처음 내가 본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나 역시 그런 사회 부적응으로 인해 고통을 겪으면서 지나온 시간들이 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서 그의 글과 삶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고 싶다는 글을 매거진 발행 이유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와 같은 부적응의 모습이 닮았다고 한다면 그 상황을 지나는 방식은 나와 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U작가의 방식은 치열함과 성실함에 기반한 정면 돌파로 보인다. 부적응과 비타협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며 이겨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U작가의 일상 속에서 겪은 일들을 쓴 글을 통해 마주하는 그의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고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U작가는 내가 낸데 식 곤조라거나 자기 고양을 통해 초인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나 역시 이삼십대에는 그와 닮았던 것 같다. 그런 당당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고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도 U작가 만큼 치열했던가 물으면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나 역시 부적응과 비타협이었지만 정면 돌파 하기 보다는 마이너적인 삶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부적응도 비타협도 정면 돌파도 마이너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적응이나 타협이나 회피나 메이저의 삶도 아닌 듯하다. 그 양자를 넘나들며 나름의 삶의 방식을 만들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치열했던가 물으며 나의 치열함을 돌아본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U작가가 치열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과 일상적 관계에서 의미 있는 인정을 받는 모습은 멋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2025.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