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든 무엇이든 일방적으로 퍼붓는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다. 얼어붙거나 타버리지 않도록,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지켜주는, 그리고 알아봐 주는. 딱 그 정도의 선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선을 지키는 일에 실패할 때가 있다.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실수다. 하지만 성인이므로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함 또한 필요할 것이다.(관계의 선)
오늘 우리 부장님이 연가로 부재중인 사이, 새로운 배치표가 게시됐다. 의외의 결과였다. 폭파된 방 계장님은 현재 부서의 다른 방장님 방으로 배치되셨고, 나는 지금 우리 방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제3의 계장님이 난데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지만, 우리 방장 부장님이 나를 힘껏 끌어안은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이해관계가 얽힌 것인지, 아니면 임시조치인지 확실히는 모르겠다. 몇 주간 지속되었던 고용불안 상황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고용불안의 해소)
부장님은 주말에 꼭 상의는 와이셔츠 하의는 운동복을 입고 오신다. 상하의를 통일하시면 어떻겠냐고 굳이 말하진 않는다. 부장님의 허술한 차림이 왜인지 친근하기도 하고. 오늘은 수능이 끝난 따님을 데려오셨다. 그 애는 우리 부장님과 나와 같은 가문 같은 파 나와 같은 42대손 동생이다. 서로 부끄러워서 인사는 안 했다.(지난밤 꿈)
눈을 떴을 땐 여전히 나는 쓰레기집 안에, 옷 산맥 속 흰 침대 위에 인형을 안고 있었다. 침대 밖으로 나가기 싫어서 일부러 더 잤다. 보고 싶은 사람이 나왔던 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지난밤 꿈 2)
우울한 사람이 잘 씻지 않거나 집을 방치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나는 내가 특별히 우울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불안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잘 씻고 다니기는 한다. 하지만 우리 집 상태가 내 어지러운 심리상태를 보여준다고 한다. 복잡한 설명은 핑계고 어쩌면 단순히 내가 타고나기를 게으르거나 정리정돈에 영 소질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이번 주말에는 우리 집의 말끔한 흰 바닥을 보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쓰레기집)
다채로운 세계관을 가진 탁월한 작가님들이 하나의 주제에 모여주셨고, 고유의 빛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데 어우러져 멋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름의 진통도 겪었고,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고 돈독해져 가면서, 약 한 달 반동안 함께한 경험은 모두에게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공지> 크리스마스의 악몽 발행계획)
시대적으로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했고, 팔자가 드세다며 여아낙태가 만연하던 백마의 해에 꿩 여자아이로 나는 태어났고, 그래서인지 내 삶은 녹록지 않았다. 나는 희고 작고 마르고 외관상 약해 보인다. 특별히 어디 가서 나서지도 않고 목소리도 작고 낮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내가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깨달았다. 나는 전쟁터의 흰 말이고, 닭이 아닌 꿩이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강인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작고 약해 보이는 여자로 태어난 건 애초에 큰 문제가 아니었다.(닭장 속 꿩)
참여 작가님들 중 몇 분께서 나름의 홍보, 공동 프로젝트 후기와 감상, 그리고 소회에 관한 글을 작성해 주셨습니다. 이곳에서 또 한 번 각 작가님들 고유의 개성과 감성, 세계관이 드러난 또 다른 멋진 작품들이 태어났기에 공유드려보고자 합니다. 다음 주 본격적인 작품 발행 전, 편하게 감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끝, 그리고 또 시작.)
2025. 12. 27.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