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꿩이고 두루미고 여자아이 태몽으로 영 내키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앵두나 자두라든지 귀여운 토끼나 고양이 태몽이었다면 남들에게 말할 때 더 으쓱할 것 같다. 왠지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이고. 꿩이든 두루미든 간에 어쨌든 둘 중 하나는 맞으니 나는 조류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인가 보다. 이미 세상을 떠난 할머니한테 물어볼 수는 없으므로, 기왕 조류라면 까짓 거 훨훨 날기로 한다.(꿩인가 두루미인가)
내년에 우리 회사도 망하고, 나도 빚을 갚아야 하기때문에 강제로 이사를 해야 하는 처지이므로 계장님의 제안에 응하기로 했다. 한번 가서 내년의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당장 부장님께 저 사주 보러 철학관에 가야 해서 조퇴 좀 하겠습니다, 혹시 철학관 아저씨가 저에게 회사를 떠나는게 좋겠다고 하면 제가 이곳을 그만둘 수도 있으니 업무에 참고하시라는 말과 함께 미련 없이 524호를 나가버렸다.(524호 2)
부장님은 얼마 전 27년 근무생활 중 지금이 가장 편하고 즐겁다고 말씀하시며 두 팔을 흔들어 춤을 추셨다. 나도 10년 근무하는 동안 지금 이곳이 제일 마음 편하다. 비록 회사가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오늘 좋은 사람들과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입, 좋은 차 한 모금을 나누어 마시며 사건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 이 소소한 행복이 조금만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고, 소망해 본다.(도끼를 든 아저씨)
표면적으로는 예술가가 뮤즈를 추앙하고 숭배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역방향의 역학 기류가 흐른다. 그녀 본연의 자아와 개성을 타자의 시선으로 회의하게 되고, 예술가의 사랑과 의존과 헌신의 무게를 안게 된다. 그 감정의 무게는 자칫 일종의 폭력이나 억압이 될 수 있다. 뮤즈는 예술가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감각할 줄 안다.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애초에 그렇기에 뮤즈는 뮤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자칫 어느 한쪽, 혹은 모두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의할 것.(당신의 뮤즈(Muse)
얼마 전, 10년 선배인 앞자리 계장님이 내게 한소리를 하시자 우리 부장님은 내가 지각한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우리 ㅇㅇㅇ파 42대손은 잘못이라는 걸 할 수가 없다고 역성을 들어주셨다.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이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먹을 수 있고. 부장님이 정성스럽게 내려주시는 커피와 차를 자리에 앉아 받아먹는 행복한 수사관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 같다.(딸기 생크림 케이크)
평소 같았으면 사양했을 제안에 나는 흔쾌히 응하고 커피도 큰 사이즈로 얻어먹었다. 꾸벅 인사도 했다. 상대는 나보다 어린 후배다. 나는 아무리 가난해도 웬만하면 후배에게 얻어먹지 않는다. 애초 오늘의 자리는 내 부채감을 덜기 위한 자리였다. 일반적으로 내 성격상 허용하지 않던 것을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부채감이 더 생겼어야 맞는데 오늘은 그게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안전하게 여기기로 마음먹었다.(안전에 관하여)
친구는 내게 물었다. 영상의 삶을 원하냐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나도 남들처럼 영상기온에서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곧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겨울을 견디고 난 이후 피는 꽃과 열매는 훨씬 더 예쁠 거라고도 했다.(기초체온)
본질은 같지만 정 반대의 언어를 쓰는 사람. 서로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이 완벽하게 상충되는 두 세계가 만나게 된다면.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제3의 멋진 신세계가 생겨날지, 빅뱅이 일어나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 그저 별볼일 없는 충돌로 시시하게 마무리될지. 뭐든 상관없다. 그 맛있어 보이는 탐나는 뇌를 한 입이라도 맛볼 수만 있다면.(너의 뇌를 먹고 싶어)
2025. 12. 28.
문장 출처 - Ubermensch의 브런치스토리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