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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Oct 07. 2023

세상에 좋은 일

-영화 <허공에의 질주> 읽기

<허공에의 질주>로 알려진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 <Running on Empty>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는‘이라는 뜻이다.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제목의 이 영화는 아더와 애니, 대니와 해리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지금, 여기‘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반전운동의 하나로 군사실험실을 폭파하다가 실수로 경비의 눈을 실명하게 한 아더와 애니 부부가 두 아들 대니와 해리를 데리고 FBI에 17년간 쫓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FBI에 잡히면 모든 게 끝이고 아니면 여전히 쫓기며 살아가야 하는 삶,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삶이다.      


그런데도 6개월마다 사는 곳 바꾸고, 이름 바꾸고, 직업 바꿔가며 열심히 산다. 이미 반전운동에 대한 기운이 사그라든 미국에서 자기들끼리 보고도 하고, 비판도 하며 오로지 열심히 살기만 할 뿐이다.     


부모에 의해 주어진 삶을 이해하려는 듯 ‘우리는 조직이야’라는 아버지의 말에 묵묵히 따르는 대니, 더 나아질 것도 없지만 아들을 놓아주지 못하는 아버지. 대니의 모습에서는 갑갑함이,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보였다. 결국 아더는 ‘세상에 좋은 일 한번 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대니를 놓아주게 된다.     


영화를 보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이제 나는 대니에서 아더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더를 따르면서도 나의 삶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던 대니에서 이제 ‘청년 대부분이 졸업 후 실업자나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청년 실신의 시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연애와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하려는 삼포세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니들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는 세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더처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대니들을 붙잡을 자신도, 세상에 좋은 일 하라며 권할 자신도 없다. 나 스스로 좀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할 뿐이다. 청년 실신과 삼포세대의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을 생각하다 아도르노의 생각들을 떠올린다.


그의 생각처럼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자연을 파괴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도구적 이성”, 자본의 계산 논리에 따라 규격화, 동일화, 상품화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배제시키려 드는 “동일성 사유”를 비판하면서 사는 것, 그리하여 자기 자신이 그런 폭력적 이성이 되지 않으려 애쓰며 사는 것이 세상에 좋은 일 하며 사는 길 중 하나일 것이며, 자본독재를 넘어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2011. 11. 12.) 

    



위 글을 쓴 때로부터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삼포 세대는 어느덧 칠포 세대를 지나 삶의 ‘희망’마저 포기했다는 N포 세대를 거쳐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세상에 좋은 일하며 열심히 사는 아더들은 도처에 존재하며 그들이 ‘희망’이기도 하다.  

         

고등학생 환경운동가 크레타 툰베리는 ‘기후·경제·전쟁’ 위기를 야기하는 자본주의를 ‘대책 없는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저자 사이토 고헤이는 “그러한 아이들의 주장에 부응하려면 우리 어른들은 우선 현재 시스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다음 시스템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에도 ‘그릇된 실천’에 가담하지 않기 위한 아도르노의 ‘자기 성찰’은 늘 함께해야 할 것이다.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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