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할 때 아도르노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기준이 있다. 하나는 philosophy다. 필로소피에서 philo는 사랑, 욕구, 뭔가 하고 싶어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 없으면 철학이 안 된다. 그건 생생한 주체의 살아있는 무엇이다. sophy는 지, 지혜 이것은 그냥 제멋대로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남들이 봐도 일정한 구성력, 설득력이 있어야, 객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야만 철학이 된다 그런 관점이다.
근데 세계관이라는 건 뭘 하나 정해놓으면 그 틀로 자꾸 본다. 그걸 벗어나는 것을 생각하려고 하거나 추가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그런 걸 넘어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유주의자 아니냐 하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런 면도 좀 있다. 아도르노는 사고에서 어떤 틀에 박히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는데 그렇다고 제멋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변증법이 옳기 때문에 가겠다가 아니라 생각을 해보니 변증법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게 옳아! 이렇게 가야 돼! 이런 생각으로 가고있는 게 아니라 옳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게 변증법인 것이다. 변증법이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가다 보니 변증법 쪽으로 계속 붙는 것이다. 그런 전통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헤겔에게 그런 면만 있는 게 아니지만 어쨌든 헤겔에 의해서 그런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자유주의자라고 딱 분류해서 서랍에다 넣어버리면 그런 것에 대해서 아도르노는 ‘행정적 사유’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분류하면 서로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다. 아니야 나랑 상관없는 거야.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자기 성찰도 하고 현실을 가변적으로, 전체 상황들을 가변적으로 생각하면서 그 속에서 핵심을 짚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영진, '권위주의적 성격', <도시의 무지개> 194-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