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관, 역동 속에서

by 영진

그러니까 현상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그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가를 실제로 따라 잡아가는 것이다. 연관성을 보는 것이다.


헤겔이 생각했던 사고방식 중에 ‘표상적 사유’라는 개념이 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사고하는 것이다. ‘그건 과학이 아니다’라고 보는 것이다. 개념은 그 사물의 본질을 잡아내는 사유다. 개념적 사유를 함으로써 필연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사물의 본질이 어떻게 변화 발전하는가를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태의 필연성을 모든 단계에서 파악한다는 것이다. 모든 단계라는 게 어느것들을 단계로 봐야되는지부터 해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 어려운 이야기다. 하는 데까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물화’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분업이 보편화되면서 모든 생산 영역이 다 토막토막 나가지고 자기 것만 하고 나머지는 관심도 없고 모른다. 이것이 의식이나 감각에 계속 영향을 줘서 사고방식 자체가 특정한 부분만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다.


부분들 간의 연관을 안 보는 것, 상호 작용을 안 보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변화해 간다는 역동성을 안 보는 것이다. 내가 주체로서 거기에 개입해서 어떻게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 관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세 가지가 사물화 된 사고방식의 주된 특징이다. 변증법적 사고하고는 완전히 반대다. 루카치가 대리물로 등장시킨 것이 ‘총체성’이다. 총체성의 관점, 연관 속에서 봐야 되고, 역동하는 과정에서 봐야 되고,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실천적으로 변화할 것인가를 따진다.



-하영진, '사태 자체에 대한 통찰', <도시의 무지개> 238-240쪽.




도시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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