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예술 작품 개념에 담긴 긍정적 요소, 즉 이데올로기적 요소는 완전한 작품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수정된다. 완전한 작품들이 실존한다면 예술을 포함하는 화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로 화해가 가능할 것이다. 완전한 작품들에서는 예술이 자체(432)의 개념을 지양할 것이다. 파손된 것과 단편적인 것으로의 전환은 사실상 그 작품들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되고자 해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요구를 해체함으로써 예술을 구제하려는 시도다. 단편은 그 두 계기를 지닌다. 한 예술 작품의 수준은 그것이 결합 불가능한 문제와 맞서느냐 그로부터 도피하느냐에 따라 본질적으로 결정된다. 형식적이라는 계기들 속에도 결합 불가능한 것에 대한 그 계기들의 관계를 통해, 그것들의 법칙으로 인해 파손된 내용이 다시 나타난다. 형식 속의 그러한 변증법이 작품들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이 변증법이 없다면 형식은 실제로 속물들이 생각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공허한 유희일 것이다. 이 경우 깊이를 예술 작품에서 열린다는 주관적 내면성의 심연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깊이는 오히려 작품들의 객관적 범주다. 깊이에서 나오는 피상성이라는 재치 있는 수다는 깊이에 바치는 찬사와 마찬가지로 저급하다. 피상적인 작품들에서는 종합과 관련되는 이질적 계기들까지 종합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즉 이 두 가지가 결합되지 않은 채 서로 나란히 진행된다. 산만한 요인 혹은 모순에 찬 요인을 은폐하지 않고, 또 그것을 화해되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두지도 않는 예술 작품들은 깊이가 있다. 그런 예술 작품들은 그 요인을 화해되지 않은 상태로부터 알아볼 수 있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강제함으로써 화해의 가능성을 구현한다. 적대 관계들은 형상화된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화해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현상으로 나타나 예술 작품들에서의 모든 작업을 규정함으로써 본질적인 것이 된다. 그것들이 미적 형식 속에서 주제로 되면, 그것들의 실체적 성격은 그만큼 더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여러 역사적 국면에는 화해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현대보다 좀더 많은 화해의 가능성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433) 작품은 서로 분리되는 요인을 폭력 없이 통합한다는 점에서, 적대 관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서 현존재의 적대 관계들을 초월하기도 한다. 예술 작품들의 가장 내적인 모순, 가장 위협적이면서 생산적인 모순은 그것들이 화해를 통해 화해 불가능하게 되지만, 그 본질구성적 화해 불가능성으로 인해 예술 작품들 자체에서도 화해가 제거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예술 작품들은 그 종합적 기능, 즉 결합되지 않은 요인들의 결합으로 인해 인식과 접한다.(434)
ㅣ출처
미학 이론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원제 : Asthetische Theorie
아도르노 [미학이론]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