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방을 쓴다. 생존을 위해서 생의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비해야 하는 생산방식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 생산수단의 소유방식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은 해방을 위한 충분조건일 것이다. 생존을 위해 팍팍해진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가 눈길을 주기가 마음을 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겠다. 그로부터 생산방식이나 생산수단의 소유방식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관계를 이루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해방이 결국 자본이나 권력을 둘러싼 사람들의 자본과 권력에 대한 소유방식의 문제라고 한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서부터 먼 곳에 있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 해방을 이루어 가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한 사람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 해방의 필요조건이라고 한다면 해방은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상호작용에 의해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어가는 것이며 구조와 그 구조를 이루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해방 세상을 맞추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양극화와 소외를 넘을 소유 방식,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변증법적 인식, 대중을 사로잡을 이론적 무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의 단결.
해방을 쓰기 위해 나는 위의 주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사람, 자연, 책, 여행, 문학, 예술’과의 만남 속에서 현실을 읽고 바라는 현실을 쓴다. 나는 그렇게 해방을 써나간다. 글과 함께 나의 해방을 짓는다.
ㅣ남의 삶, 나의 삶
‘남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남의 삶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못 말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낸 경험이 풍부하여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조심하기도 한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공간, 한 시간을 살아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현실이 다르게 경험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애초에 다른 우리가 한 공간에서 한 시간을 살아야 한다면, 부대끼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기본일 것이다. 남의 삶에 관심도 가지고, ‘문학과 예술’을 통해 간접 경험도 하고, 역사 속에 실재했던 삶들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한 공간에서 한 시간을 함께 사는 것이 때론 고통과 어울리며 즐겁기까지 한 삶을 사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두 번은 없으니 오직 한 번뿐인 삶이니 소중한 시간들을 더불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 활동을 통해 풍부한 현실을, 변화하는 현실을, 바라는 현실을 형상화 해보기도 하면서, 다른 우리들이 닮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하면서, 서로의 삶을 나누며 하나 되어 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말이다. 나의 삶을 살기도 바쁜 세상에, 남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것은 그런 마음에서일 것이다. 남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남과 다른 나의 삶을 남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함일 것이다.
ㅣ조건을 만들면서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욕구에 불편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한 욕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지나친 경쟁으로 치닫거나 그리하여 타인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 욕망으로 표출될 때 불편하다.
그러한 욕구는 개인적인 불편을 넘어 상호 인정의 관계만 아니라 공존을 위한 공동체를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경쟁이나 권력관계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 역시 인간이 만들어 온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그런 점에서 인간들이 경쟁의 욕구와 권력의 성격을 바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경쟁으로 인간을 줄 세우고 등급을 매기고 권력의 이름으로 타인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들지 않는 그런 사회일 것이다.
타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상호 인정하고 사랑하는 그런 관계가 쉽지 않은 것도 맞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 더 인정받고 싶은 것이, 권력을 의지하는 것이 이상하지도 않다.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간들의 관계가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상호 인정의 관계로, 그러한 관계의 사회로 변해가기를 바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바람과 함께 변화의 조건을 만들면서 바라는 대로 변해가는 것이 상호 인정의 관계이고 사회와 공동체의 모양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경쟁의 욕구도, 권력의 성격도, 공존의 가능성도 변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ㅣ더 나은 관계
한 사람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 ‘사랑, 사람의 관계’에서 기본이라고 여깁니다. 부모-자식, 친구, 연인, 부부, 동료, 이웃, 누구 할 것 없이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본적인 자세일 것입니다.
사랑도 우정도 ‘사람의 관계’의 연장이라고 여깁니다. 사람의 관계가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우선될 때,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우정도 사랑도 꽃피기 쉽고 그들의 관계가 지속적일 가능성도 크다고 여깁니다.
‘한 사람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한다’는 말은 그 누구도 그 누구의 ‘소유물’이나 ‘도구’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깁니다. 저는 대부분의 사람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각자가 독립적인 인격체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서로의 삶의 동반자, 조력자, 버팀목과 같은 환경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사랑, 사람의 관계’에서 지향해야 할 방향일 것입니다.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방향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을 나와 동등한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한다’는 것이 ‘관계’의 기본일 것이다. 한데,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신에게는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라면서 정작 자신은 상대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 때 갈등이 발생하곤 한다.
당신이 먼저 그렇게 대해주면 나도 그렇게 대해주겠다. 기싸움, 자존심 싸움, 인정 투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보다 우위에 있으니 당신이 먼저 나를 그렇게 대해야 해, 그런게 어딨어. 사람은 다 똑같은데. 당신이 먼저 안 하면 나도 안해.
그리하여, 인정 투쟁을 넘어 권력투쟁, 음모와 복수의 역사가, 더 사랑하기 보다 더 사랑 받으려는 사랑과 전쟁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이기도 할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사랑 혹은 희생이라면 모를까. 서로가 서로를 동등한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하는 ‘평등한 공동체’는 참으로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러한 이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가능성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어려워서 그렇지 하는 만큼 되는 만큼 어떤 모양이든 더 나은 관계를 지향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2026.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