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쓰자 31

by 영진

나는 해방을 쓴다. 추운 겨울을 지나온 때문일까. 봄은 해방이라는 낱말을 연상케 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의 생가터에는 200년 된 라일락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한옥 카페가 운영되고 있었고 몇 차례 갔었는데 이제 재개발로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봄이 오고 있는 지금 라일락 향기 때문인지 문득 생각났다. 라일락 나무가 살아남을 수 있을런지.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나고 새싹도 나고 생동하는 봄엔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걷고 싶어진다. 추위에 움츠렸던 몸이 두꺼운 옷 속에 갇혀있던 피부들이 해방을 맞는 계절이기도 하다. 미세먼지와 이른 더위가 신경 쓰이지만 계절이 없어지고 있어서 그래서 더욱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찾아 느끼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봄이니까, 해방!


경제 양극화와 소외를 넘을 소유 방식,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변증법적 인식, 대중을 사로잡을 이론적 무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의 단결.

해방을 쓰기 위해 나는 위의 주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사람, 자연, 책, 여행, 문학, 예술’과의 만남 속에서 현실을 읽고 바라는 현실을 쓴다. 나는 그렇게 해방을 써나간다. 글과 함께 나의 해방을 짓는다.



ㅣ이루어가라고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겠다면

물불 안 가리는 실천을 할 것이다

그런 실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간절히 바라지 않는다는 것인가

물불 안 가리는 건 어떤 것인가

이루고 싶은 간절함의 정도에 따라

실천의 강도도 다를 것이다

간절함의 정도도 실천의 강도도

간절함과 실천의 긴장 속에 있다

작은 간절함과 실천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결실을 맺거나

너무 간절해서 강력한 실천을 촉발하거나

강력한 실천이 간절함을 일깨우거나

그랬던 간절함 그랬던 실천 그랬던 방식

그랬던 지금보다 그러할 지금이 중요하다

결과에 상관없이 간절함은 실천을 부르고

실천이 간절함을 낳기도 한다

결과를 묻기 전에 과정이 결과를 말해준다

늘 결과보다 과정을 강조하게 되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에 충실하라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루어 가라고



ㅣ마우어 파크에서 간고등어를 만났다


나는 공원을 좋아하고, 도서관을 좋아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원도, 도서관도, 책 읽기도, 글쓰기도, 산책도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묻는다. 왜에?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받으니 문득 나도 궁금해진다. 나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어릴 적 집 근처에 공원이 있었고, 공원과 더불어 도서관도 있었고, 숲도 있었고, 놀이동산도 있었고, 수영장도 있었고, 공연장이나 미술관도 있었던 때문인 듯싶다. 그곳이 나의 생활공간이었던 셈이다. 어릴 적 생활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그렇게 생활해 왔고 생활한다. 그것 말고도 어떻게 생활하는지 이야기할 거리는 많지만 대체로 ‘책, 장소, 사람, 예술, 자연’과 만나며 생활한다. 나는 그렇게 만나며 생활하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일상의 여행’을 즐긴다. 일상을 떠나는 여행도 ‘일상 같은 여행’을 즐긴다. 유명 관광 명소를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그곳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즐긴다.

그해 나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5개월가량 생활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생활을 했다. 나는 내가 살던 도시에서처럼 ‘책, 장소, 사람, 예술, 자연’을 그곳에서도 만나는 생활 같은 여행을 했다. 그리고 마우어파크(mauerpark)에서 ‘간고등어’를 만났다.

작년이었나. <비긴 어게인>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반가웠던 마우어파크는 베를린의 일요일 벼룩시장(flea market)으로 유명한 공원이다. 우리말로 벽(mauer) 공원(park)이다. 베를린 장벽이 남긴 흔적 중 하나의 장소인 것이다.

베를린 장벽의 흔적 중에서 대표적인 장소는 ‘역사’의 흔적을 예술과 함께 보존하고 있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 일 것이다. 화가들의 그림으로 채워진 장벽은 ‘통일 (혹은 연결)’과 ‘평화’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갤러리에는 화가들의 그림만 아니라 ‘나의, 너의, 우리의 그림’도 있다. 나의 낙서 같은 그림이 아직 그 벽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동서독을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은 이념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의 가수들이 독일의 공원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국경을 넘어선 인류의 연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 예술의 연결로, 평화의 울림으로 자본이 세워 놓은 탐욕의 전쟁과 수탈(자연)과 착취(노동력)와 폭력(차별)과 소외(관계)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마우어파크에 방문했던 그날도 공연이 있었다. 공연장은 장벽의 흔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흙더미와 풀더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었다. 그들 더미 위의 관객석 아래 중앙에 무대가 있다.

그날의 공연은 배우의 1인극이었고 벼룩시장을 찾은 방문객들을 흥겹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배우의 능숙하고도 익살스러운 연기와 함께 관객들은 하나 되어 웃고 떠들고 마시며 역사의 흔적 속에서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역사의 아픈 흔적을 잊은 채 즐거웠던 그날의 그 시간은 오히려 지금껏 잊히지 않고 기억되고 있다. ‘장벽공원’이라는 ‘장소’를 통해서, 관객들과 흥겨워했던 무대와 함께, 그곳에서 구입했던 한 권의 중고서적과 함께, ‘아픔’의 역사와 ‘작별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의 ‘아픔’을 직시하고 대면할 용기를 갖기 위해, 지금도 존재하는 자본이 세운 장벽을 허물기 위해 더 많은 만남의 행위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 아픔과 작별하기 위해서 말이다. 장소, 그림, 음악, 영화, 책, 사람, 사건과의 만남을 통한 행위들일 것이다.

생활 속 그 만남들을 통해 우리는 작별하지 않으며 작별하는 법을 익혀간다. 그해 그곳의 역사와 지금 이곳의 역사가 만나 연결되고 연결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이곳의 아픔의 역사와 작별하지 않으며 작별하는 연습을 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베를린 장벽이 남긴 흔적, 마우어파크를 간고등어와 함께 작별하지 않으며 작별한다. 기억하며 잊어 간다. 아픔과 작별하며 작별하지 않으려 벽을 허물며 생활한다.

내가 좋아하는 간고등어로 인해 그곳의 아픔, 이곳의 아픔과 작별하지 않으며 작별하고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매일 아픔과 작별하며 작별하지 않을 수 있다.



ㅣ뜨겁거나 따듯하거나


‘뜨겁거나 따듯하거나’ 나의 ‘브런치스토리’ 6개월의 중남미 여행기를 담은 ‘매거진’의 제목이다. 언젠가 그 제목 그 느낌으로 ‘라틴아메리카’라고 불리는 중남미에 대한 여행기 이상의 내용을 담은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 곳의 여행에 저 제목을 붙인 이유는 여행의 어느 땐가 그 곳의 기후와 지형과 사람들에 조금 익숙해질 무렵 그 곳의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그 뜨거운 태양 아래 살다 보니 그 곳 사람들이 따듯해진 것 아닌가, 따듯할 수밖에 없게 된 것 아닌가 내 맘대로 생각한 것이다.

그 뜨거운 태양의 神이 지배하는 그곳에서 어떻게 차가울 수 있을까.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또한 그들이 아무리 뜨거워진다 한들 태양보다 뜨거울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태양의 神이 다스리는 그 대륙에서 따듯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그 대륙도 이제 자본과 제국의 침략으로 기후 변화로 여느 지구인들의 삶과 다를 바 없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태양의 神이 지배하는 대륙을 따듯하게 살아가는 원주민들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 원주민과 관련한 소식들을 책이나 매체를 통해 접할 때면 마침 그 곳에 당도한 날로부터 2박 3일을 꼬박 도시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와 함께 보냈던 볼리비아의 꼬빠까바나kopakabana가, 콜롬비아에서 파나마시티로 가던 길에 2박 3일을 묵었던 카리브해의 섬들에서 마주했던 야생의 색감과 풍경이 종종 떠올려지곤 한다.

내 몸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지거나 너무 차가워져 사랑하는 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종종 뜨거운 그곳의 따듯한 사람들의 온도를 몸으로 떠올려 느껴보곤 한다. 그렇게 내 몸의 체온을 따스하게 유지하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체온을 나누려 한다.




2026.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