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사멸할 수 있다는 헤겔의 전망은 예술이 형성된 존재라는 사실과 부합한다. 그가 예술을 소멸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절대정신에 속하는 것으로 본 점은 그의 체계가 지니는 양면성과 조화를 이루지만, 이는 그가 결코 끌어내지 않았을 결론을 초래한다. 즉 그가 예술의 절대적 요소라고 생각한 사상내용Gehalt이 예술의 생사 차원과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자체가 소멸하더라도 예술의 사상내용은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근세에 와서야 생겨난 위대한 음악이 단지 인류의 한정된 시기에만 가능했다는 것은 단순한 추상적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다. 예술이 역사적 세(15)계 혹은 ‘객관에 대해 취하는 입장’ 속에 목적론적으로 설정된 예술의 반란은 예술에 대한 예술의 반란이 되었다. 예술이 이를 견뎌낼지를 예언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한때 반동적 문화 염세주의가 외치던 문제, 즉 150년 전에 헤겔이 생각했던 바와 같이 예술이 몰락의 시대에 들어섰을 수도 있다는 문제는 문화에 대한 비판을 통해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랭보의 비범한 말이 자체로서 이미 100여 년 전에 새로운 예술의 역사를 그 극단까지 앞질러 구현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피고용인이 되어 침묵하게 된 사실은 예술의 몰락 경향을 미리 보여주었다. 오늘날 미학은 예술에 대한 추도사가 될 것인지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미학은 장례식 연설자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전반적으로 예술의 종말을 확인하고 과거의 것을 즐기며, 어떤 명분으로든 야만상태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야만상태도 그것이 자체의 야만적 해악에 대한 보상으로 이용한 문화라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은 없다. 이제 예술 자체가 말살되든 스스로를 말살하고 소멸하든, 아니면 필사적으로 존속하든 상관없이 과거 예술의 사상 내용도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의 야만성을 탈피한 사회 속에서는 예술의 사상 내용이 예술보다 더 오래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형식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소재들도 이미 사멸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빅토리아 시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간통 관련 문학은 전성기 부르주아사회의 소가족이 해체되고 일부일처제가(16) 느슨해진 이후로 이제 직접 다루기 어렵게 되었고, 그래서 단지 잡지의 통속문학에서나 빈약하고 왜곡된 상태로 잔존할 뿐이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의 진정성은, 일단 사실 내용에 녹아들어 간 이상, 이미 오래전에 이 사실 내용과 그 쇠락을 넘어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신을 불굴의 것이라고 믿는 역사철학적 낙관주의로 잘못 넘어가서는 안 된다. 소재 내용과 아울러 그 이상의 것도 함께 소멸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이나 예술 작품들이 사라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타율적이고 종속적인 경우만 아니라, 분업적이고 분열된 정신의 사회적 정립을 승인하는 예술의 자율성이 형성되는 경우에도, 그것들이 예술일 뿐만 아니라 예술에 이질적인 것 내지 대립적인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술 자체의 개념에는 이 개념을 지양하는 효소가 섞여 있다.(17)
ㅣ출처
미학 이론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원제 : Asthetische Theorie
아도르노 [미학이론] 읽기